인구 11만명이 사는 레이캬비크의 아담한 모습.
인구 11만명이 사는 레이캬비크의 아담한 모습.

  국가의 이름 자체가 ‘Iceland’다. 얼마나 얼음이 많으면 국가의 이름에 ‘얼음’이 들어간단 말인가. 이름으로만 봐서는 얼음 밖에 없을 것 같은 아이슬란드에 가려고 벼르던 것이 몇 번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과 에스파냐 와인의 맛에 빠져서 일정을 다음으로 미뤘고, 베를린에서는 수많은 박물관을 보느라 원래의 계획에서 자연스레 없어져 버렸다. 유럽의 변방국(邊方國)으로 가는 길은 교통수단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망각되고 삭제되어서 한없이 어려웠던 것이다. 막상 간다고 해도 ‘얼음’이 많은 나라에서 무엇을 할지 막막한 마음도 한몫했다. 정말 얼음이 많아서 ‘Iceland’인 것인지 검증해보고 싶은 마음은 대성당과 축제로 나를 열심히 유혹하는 ‘변방국이 아닌 유럽국가’에 속절없이 힘을 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작년보다는 더위가 심하지 않아서 선선한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약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미루다가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유럽대륙에서 꽤 떨어져 있는 이 작지 않은 섬나라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濃厚)하여, 종강하자마자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Reykjavik)행 비행기 표를 샀다. 그것도 예약과 동시에 결제까지 끝냈다. 언제나 결제시한까지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연기가 나오는 땅’이라는 뜻인 레이캬비크로 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나에게 왜 이런 용기가 생겼는지는 비교적 수월했던 이번 여름의 더위만이 그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항구 도시인 레이캬비크는 왜 이제야 왔냐고 질타하는 것처럼 잔뜩 구름 낀 날씨로 나를 맞이했다. 전 국토의 약 80퍼센트가 용암지대, 빙하, 호수로 이루어진 아이슬란드는 여행자에게 계절별로 상당한 ‘테크닉’을 요구한다고 여러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만, 11만 명이 사는 레이캬비크는 다른 북유럽 국가의 지방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숭실대학교가 있는 동작구의 인구가 무려 40만 명에 달하는데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이 도시의 인구는 고작 11만 명이라니. 국토면적이 대한민국과 거의 비슷한 아이슬란드지만 전체인구가 34만 명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엄청 큰 도시인 셈이다. 이런 레이캬비크에 연간 2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하니 언뜻 계산이 안 된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도시들에서 비싼 물가에 대한 내성이 충분히 생겼다고 자부했는데 레이캬비크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대단히 높은’ 물가 수준을 경험하고 좌절 아닌 좌절을 맛보았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먹는 한 끼는 7만원 정도나 되었고, 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 길거리 음식도 3만원이나 했다. 전적으로 나의 기준이지만 돈을 생각하면 여행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도시 1위에 레이캬비크를 올렸다. 하루에 두 끼만 먹기로 하고 여행을 다니니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여름이 짧은 아이슬란드에서 7월과 8월은 여행의 최고 성수기라서 호텔비와 렌트카 비용이 비수기에 비해 2배가 상승했다는 말에 왜 지금까지 나의 발길이 이 도시로 향하지 않았었나를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었다.  

  활화산이 만들어 내는 지열(地熱) 때문에 수증기가 땅에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작명되었다는 연기가 나오는 땅 레이캬비크에서 언젠가 이 도시에 다시 올 것임을 기약했다. 물가가 비싸도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땅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따스한 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북구를 밝히는 한여름의 백야(白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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