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빗집 백수 아들(김승우)과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자(장진영)는 연인이다. 이들은 딱히 바쁘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놀고 싸우며 연애한다. 자기 처지에 대한 걱정도 없이, 밀고 당기기도 없이 오늘만 살 것처럼 사랑하는 모습이 그런대로 보기 좋았다. 그러나 거침없고 의리있고 당당하던 여자는 점점 질투와 체념을 반복하며 구차해지고 남자 또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에 빠지면서 영화는 어두워진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가 변하는 기점은 남자의 결혼식이다.

  결혼, 즉 혼인으로 인하여 쌍방 당사자는 배우자라는 지위를 가지게 되고, 상대방의 친족 일부와 인척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는 새로운 신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대외적으로 공시되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결혼‘식’이라는 세레모니가 존재하는 것, 그리고 혼인신고를 함으로써 국가가 관리하는 데이터(가족관계등록부)에 혼인관계를 등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냉정히 말하자면 혼인은 결코 둘만의 관계가 아니며 사랑만 가지고 이루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자는 결혼 날짜를 잡은 남자 엄마에게 “나 영운 씨랑 4년이나 사귀었어요. 아니, 살았거든요” 라고 울먹이지만 안타깝게도 그 4년의 시간은 판례의 표현을 빌리자면 “간헐적 정교관계”에 불과하다. 이것으로는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남자는 우리의 여주인공과 애초 결혼할 생각 없이 연애만 했다. 남자의 친구들, 여자의 친구들, 그리고 비속어가 난무하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모두 남자를 시원하게 욕한다. 욕을 먹어도 별로 불쌍하지 않은, 드물게 보이는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남자처럼 우유부단한 인간이 아니라 해도, 많은 정상적인(?) 연인이 혼인 앞에서 망설인다. 혼인으로 인해 사방으로 얽힌 낯선 친족관계에 편입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혼인이 두 당사자를 강력하게 구속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를 부양하고 정조를 지킬 의무가 있으며 사망과 이혼이 아니면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만약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부모라는 관계는 이혼 후에도 지속된다. 그래서 종교와 관습의 힘이 약해진 사회에서는 동거만 하는 커플이 늘어나고 혼인율이 낮아진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혼인의 법적 효력은 원치 않으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커플을 위해 팍스(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라는 동거 계약 제도를 신설하기도 했다.

  남자의 결혼식날, 여자는 가라오케에서 “난 괜찮아”라는 노래를 부르면서(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환상처럼 남자와 신혼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꿈꾼다. 자동차에 올라서서 흰 옷자락을 날리는 그녀의 모습이 더없이 처연하고 아름답다. 둘의 연애가 앞뒤 재지 않고 시작되었고, 둘 모두에게 혼인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그러한 기대를 하기에는 여자가 남자를 너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으니-고 해도, 결혼 후의 남자를 결혼 전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 “그 여자랑 자는 건 화가 안 나는데, 그 여자랑 누워서 얘기하는 걸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영화 속의 적나라한 표현을 그대로 쓸 수 없어 아쉽다)”는 말은 사실 혼인과 연애의 차이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주인공 남녀는 살을 맞대고 험한 소리를 주고 받으면서도 서로 안 보고는 못 사는 사이지만, 그들은 계속적·안정적으로 공연(公然)하게 이루어지는 혼인공동체의 일상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가 지속하는 관계의 위법성, 소위 불륜관계의 비도덕성을 논외로 하여도, 위와 같은 격차를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여자가 남자의 아내에게 불륜관계를 알리자, 남자가 여자를 두드려 패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면서 둘 사이는 파국을 맞게 되는데, 사실 이 고통스러운 관계를 끝내고자 하는 여자의 의도도 어느 정도 섞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두운 술집거리의 길바닥에 앉아 건너편의 남자를 보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여자의 마지막 표정을 보면, 이 두 사람은 뻔한 결말을 알고 서로를 상처 주면서도 만남과 헤어짐을 진저리나게 반복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에 나도 덩달아 먹먹해진다. 그들의 연애는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가 없다. 다만 혼인의 무게, 그 하중(荷重)을 참을 수 없었을 뿐이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