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있는 프라이팬을 보면 대부분이 검정색을 띠고 있다. 원래는 은색을 띠는 알루미늄으로 프라이팬을 만든 뒤 검정 코팅을 하게 되는데 이 검정색 물질이 바로 사연이 많은 테플론(teflon)이다.

  사실 테플론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핵폭탄을 만들 때 쓰던 물질이다. 핵물질들은 반응성이 너무 강해 폭발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듀퐁(Dupont)사에서 개발한 (실제로는 개발이 아니라 우연히 만들어졌다가 어디에 쓸지도 모르고 구석에 처박아 놨던) 테플론이 핵무기 부품으로 쓰이게 되었다. 잠깐, 테플론의 특징을 설명하자면 내부식성과 내열성, 내마모성이 좋다. 이것이 내가 대학 3학년 때 전공과목인 ‘신소재공학’ 시간에 달달 외운 테플론의 특성인데, 쉽게 말하면 녹이 생기지 않으면서 고온에 강하고 미끌미끌하며 잘 닳지 않는다는 소리다. 핵무기에 활용되던 전략 물자이기 때문에 개발 후 미국 정부의 관리를 받으며 비밀리에 사용되었다. 제작된 테플론은 모두 핵무기 관련 부품에만 쓰이다가 전쟁이 끝나고 1946년부터 일반인에게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땅히 일반 사람들은 쓸데가 없었다. 미항공우주국 NASA에서는 우주선의 방수재로 활용해 보려고 시도했으나 강도가 약해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이즈음 프랑스 엔지니어인 그레고아르(Grégoire)는 발상의 전환을 한다. 자신의 아내가 요리하다 냄비에 눌러 붙은 음식물 때문에 설거지에 짜증 내는 모습을 보고 냄비에 테플론으로 코팅을 해버린다. 음식물도 어차피 화학물질이니까 화학적으로 거의 반응하지 않는 테플론을 요리 기구에 적용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사실, 예민한 핵물질도 잘 버티던 테플론인데 반쯤 타버린 계란프라이 쯤이야 껌이였을지도 모른다. 애플, HP, 구글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도 조그마한 집의 차고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그레고아르 또한 자신의 차고 앞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테플론 코팅한 알루미늄팬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동네 주부들에게 대박을 친 후 용기를 얻어 회사를 설립해서 눈에 보이는 집안 살림살이에 죄다 테플론 코팅을 해서 팔기 시작한다. 냄비뿐만 아니라 다리미까지. 이쯤되면 이 회사 이름을 눈치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회사가 바로 그 유명한 프랑스의 테팔(Tefal)이다. 테팔이라는 회사 이름도 테플론(TEFlon)과 알루미늄(ALuminium)을 앞 글자를 합쳐서 만들었다. 전형적인 공대 남자의 작명법이다.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들어와 있는 테플론

  테플론은 주방 기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테플론을 얇게 피면 공기는 통과시키고 물방울은 걸러내는 고어텍스라는 등산복 원단이 된다. 혹시 지금 컴퓨터 마우스를 쓰고 있다면 뒤집어 보자. 바닥에 플라스틱 조각이 얇게 붙어 있고 만져보면 미끌미끌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테플론이다. 수도 배관의 이음새를 보면 흰색 얇은 테이프가 감겨져 있을텐데 이것 또한 테플론이다. 배관을 연결하는 나사산에 감아 배관을 연결하면 결합도 잘되고 틈이 메꿔져 누수가 되지 않는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 또한 테플론으로 되어 있다. 인공 혈관도 테플론이 주성분이다.

  테플론이라는 물질은 극한 환경에 잘 버티는 물질이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코팅돼 있는 다른 물질도 잘 보호해 준다. 화학적 원리는 단순하게도 주변 환경에 신경쓰지 않고 스스로 안정을 찾는 것이다. 혹시 지금 누군가로부터 비아냥을 듣거나 괴로움을 안고 있다면 우리 잠시만이라도 테플론이 되어보자. 복잡한 화학식은 뒤로 접어두고 그냥 테플론이 되어보자.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면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테플론 또한 극한 화학적 환경과 고온의 과정 끝에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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