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Titanic,1997) - 다이아몬드 목걸이
타이타닉(Titanic,1997) - 다이아몬드 목걸이
  • 이지은 교수 (법학과)
  • 승인 2019.09.23 01:33
  • 호수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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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에 영화관에 자주 간 사람이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시작 전 자주 나오던 다이아몬드 광고가 있었다. 주변이 깜깜해지고 영화 시작을 기다리는 짧은 침묵의 시간이 오면 그 시절 기준으로도 촌스러울 정도로 단순명료한 광고가 거대한 화면을 꽉 채웠다. ‘Just tell me you love me’라는 노래를 배경으로 남자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자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고 다이아몬드 반지가 반복적으로 클로즈업되는 중에 묵직한 남자 목소리로 “영원한 사랑의 약속...”운운하는 나레이션이 흘렀다. 아마도 영화 관람객의 성향을 분석하여 제작됐을 이 광고는 제법 오랜 기간 상영돼 그 타겟에 해당하는 사람들-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는 연인들-을 민망하게 만들곤 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무려 190분이 넘는 긴 줄거리를 풀어가는 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탐사가 이루어지는 동기이자 주인공(로즈)이 탐사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인이 되며 잭과 로즈, 로즈의 약혼자가 보여주는 삼각관계 구석구석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 결말에 이르러서는 로즈의 손녀조차 모른 비밀을 관객과 로즈가 공유하게 되는데, 이 할머니가 그 어마어마한 가격의 보석을 백 살이 넘도록 간직하다가 바다에 던져버리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는 목걸이 이름(Heart of the ocean)과 주제곡(My heart will go on)을 연결시키며 결말이 주는 감동에 빠졌는데 그 후로 몇 번인가 명절 특선 영화로 반복해서 보게 되니  과연 이 목걸이를 던져도 괜찮은가, 로즈의 행위를 음미하기에 이르렀다.

  약혼이란 장래 혼인의 의사가 있는 두 당사자 사이의 합의로 이루어지며 특별한 형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약혼이 깨졌을 때는 본래 계약 내용의 강제이행, 즉 혼인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부당하게 약혼을 파기한 과실이 있는 사람이 상대방의 정신적·재산적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진다(민법 제806조). 이때 약혼예물까지 이미 주고받았다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 판례는 “약혼예물의 수수는 약혼의 성립을 증명하고 혼인이 성립한 경우 당사자 내지 양가의 정리를 두텁게 할 목적으로 수수되는 것으로 혼인의 불성립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증여와 유사한 성질을 가진다”고 본다. 즉 혼인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에는 예물을 준 사람이 다시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로즈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원래 벼락부자 약혼자가 로즈에게 준 것으로서, 타이타닉이 침몰할 즈음의 상황을 보면 약혼자와 로즈의 혼인은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약혼자의 성격이 워낙 범상치 않은 데다가 하는 행동마다 잭과 비교되는 바람에 약혼자 혼자 악역을 떠맡긴 했지만 어쨌든 잭과의 삼각관계를 이유로 한 약혼 파기의 책임은 로즈에게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바(민법 제804조 제5호), 반환해야 할 목걸이를 슬쩍 가지고 숨어 살다가 급기야 그것을 바다에 던져버린 행위는 위법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다시 보이는 게 목걸이뿐이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타이타닉 침몰 후 로즈가 대학도 가고 결혼도 하고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면서 바쁘고 보람차게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는 결말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산 사람은 살아야 하겠지만 이런 일생일대의 가슴 벅찬 사랑을 하고서는 그 연인의 희생 속에 살아남았는데, 어쩌면 이렇게 평범하고 즐겁게 여생을 보낼 수 있나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그 때의 두 배쯤 나이를 먹은 나는 로즈의 삶이 납득이 간다. 한 가지 감정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이 단순하지 않고, 그러한 상태로 살아가도 좋을 만큼 인생이 만만한 것도 아니며, 뭐라 딱 찝어서 말하기도 뭣한 소소한 기쁨이나 슬픔이 삶의 꽤 큰 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차가운 바다 속에서 나무판자를 잡고 “로즈 당신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늙어서 편안히 죽으라”고 말하던 잭 도슨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영원한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고 예물은 장롱 위에 뒀다가 이사할 때 잘 챙기면 된다는 걸 그가 알고 있었을까. 도박으로 딴 티켓으로 배에 올랐던 자유로운 영혼의 마지막 부탁으로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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