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베르겐의 Fisketorget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베르겐의 Fisketorget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들에서는 어디든 어시장(魚市場)을 볼 수 있다. 어부들이 갓 잡아온 각종 해산물을 즉시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노르웨이의 현재 수도인 오슬로에서 옛 수도인 베르겐(Bergen)으로 이동하면서 감상했던 피요르드(Fjord)의 감동은 밥을 제대로 먹는 것조차 방해했다. 눈이 즐거우니 다른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이 적어도 나한테는 실증(實證)된 것이다. 몽환적인 피요르드의 모습이 다른 욕구와 감각을 잠시 내려놓게 하다니.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인지 베르겐에 도착을 하니 엄청난 허기(虛飢)가 몰려왔다. 갈증과 허기의 앙상블이 이번에는 후각을 증폭시켜 놓았다. 멀티태스킹을 못하는 나의 뇌는  오늘도 변함없이 하나씩만 지령을 내리고 있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강렬하게 풍기는 생선 굽는 냄새.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시장이 되는 ‘피스케토겟(Fisketorget)’은 베르겐 최고의 명소다. 어떤 도시에서든 나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었던 곳이 아주 자연스럽게 최고의 명소가 된다. 킹크랩과 랍스터,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북해산 연어까지 해산물의 진수(眞髓)들이 왁자지껄한 시장에서 손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관광객들이 뿜어내는 수많은 다른 언어들이 해산물을 요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각기 다른 냄새들과 뒤섞여 이곳을 더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 ‘시각과 후각과 청각’의 ‘정직한 콜라보’의 세계로 점점 빠져드는 나. 300년 전통의 어시장에서 맛보는 연어 스테이크의 맛은 단순한 연어의 맛이 아니고 ‘역사와 전통의 맛’이다. 내가 베르겐에 온 건 정말 잘 한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가장 멋지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

  베르겐은 흔히 ‘북구의 낭만주의자’라고 불린다.  사람들의 여유와 친절한 그들의 미소 때문에 그런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베르겐 항구에 정박 중인 거대한 크루즈 선의 주변을 맴도는 바다 갈매기조차 천천히 날갯짓을 한다. 가뜩이나 느긋하고 친절한 노르웨이에서 베르겐은 느긋함과 친절함의 ‘끝판왕’이 된다. 이 순간에는 ‘끝판왕’이라는 유행어로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베르겐은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영광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중학교 지리 시간 때 한자동맹의 ‘한자’를 ‘漢字’라고 생각하여 왜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유럽에서 중국의 글자를 가지고 동맹까지 맺어야 했나를 생각했었던 ‘어린 기억’이 새롭다. ‘Hansa’라는 것이 유럽 여러 나라 상인들의 조합이었다는 사실을 안 건 대학교에 들어와서였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뜻도 모르고 무조건 달달 외웠던 세계사 교육의 한계를 베르겐에서 다시 생각하다니 좀 창피하기도 하다.   

  베르겐의 브뤼겐(Bryggen)지역은 이 도시가 한 때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였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노르웨이어로 ‘항구’를 뜻하는 브뤼겐은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13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와 해상무역을 독점했던 상인들의 기세가 목조건물에 반영돼 있다. 몇몇 건물은 박물관으로 개조돼 생선을 절이고 가공했던 기구들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왜 박물관에 가면 쉽게 나오지를 못하는 것일까.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보였다. 베르겐 사람들의 여유와 미소는 이런 역사적 자부심에서 나올 것이라는 확신 또한 강해졌다. 

  몹시 배가 고파서 그랬던 것 같지만 유럽 최고의 어시장과 한자동맹의 중심도시로서의 영광을 목도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베르겐 여행을 권한다. 역사는 한 순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져지고 다져져서 자부심으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베르겐은 말해줄 것이다. 

  한 가지 빼놓은 것이 있다. 작은 반도 위에 건설된 베르겐 항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플뢰엔(Fløien)산에는 꼭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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