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수)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가 사건 발생 33년 만에 특정됐다. 대표적인 국내 미제 사건인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된 데는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의 기여가 크다. 그러나 DNA법은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지난해 8월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일대 반경 5km 이내에서 총 10명의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다.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 씨는 1994년 발생한 청주 처제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화성 연쇄 살인 사건 범죄 현장에서 나온 증거품에 대한 재감식을 요청했으며, 국과수는 5·7·9차 사건 증거품에서 동일한 DNA를 검출했다. 이에 따라 국과수는 대검찰청 ‘수형자 등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이하 DB)’ 분석을 거쳐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이 씨의 DNA와 일치하는 것을 밝혀냈다.

  경찰이 유력 용의자를 특정한 데는 DNA법의 공이 크다. 지난 2006년 발의된 DNA법은 2010년 4월 국회를 통과해 그해 7월 공포 및 시행됐다. DNA법 제5조에 따르면 △살인 △강도 △성범죄 등 11개 강력 범죄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피의자로부터 DNA 감식 시료를 채취해 DB에 보관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현재 11개 강력 범죄의 형 확정자 등 16만 9,180명의 DB를 보유하고 있다. 2001년 전남 나주에서 발생한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 역시 2012년 DNA 대조를 통해 수감자 중에서 용의자를 특정한 바 있다.

  DNA법은 강력 범죄 해결에는 탁월하지만, 제정 전부터 신체의 자유, 사생활 보호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시민단체는 집회 및 시위 참가자 DNA 채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DNA법 제5조에 의하면 △살인 △강도 △성범죄 등 강력 범죄뿐만 아니라 주거 침입과 폭력 사건 관련자에게도 해당 법이 적용된다. 이에 시민단체 측은 “강력 범죄의 재범을 막는 취지로 제정된 DNA법이 사회운동을 탄압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검찰은 용산 철거민 참사의 진상규명 활동을 하던 도중 구속된 용산 참사 철거민의 DNA 시료를 채취했다. 지난해에는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며 이사실 회의실을 점거해 ‘특수감금죄’를 선고받은 한신대 학생들에 대한 검찰 조사관의 DNA 채취 시도가 있었다.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는 DNA 특성상 유출 및 악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2016년 미국헌법학회의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형사상 활용에 따른 법률적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는 유전자 정보는 다른 개인 식별 방법에 비해 정확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정보가 유출 혹은 악용될 경우 정보 주체에게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이 광범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DNA 채취 과정에서 개인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수사기관의 강요로 무력해질 수 있는 점, 영장이 발부되면 불복 절차가 없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잇따른 헌법소원에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지난해 8월 DNA법 제8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나,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른 법의 공백이나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해당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DNA법 제8조 1항은 경찰의 영장 신청, 검사의 청구를 통해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 DNA를 채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는 채취된 DNA가 사망 시까지 DB에 남아 범죄 수사 및 예방에 활용되는 관계로 영장 발부 과정에서 의견 진술 기회와 영장 발부에 대한 불복 절차가 명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올해 12월 31일(화)까지 DNA법의 효력을 인정함과 동시에 같은 날을 개정 시한으로 정했다. 그러나 정해진 일시까지 개정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입법 공백 상태가 발생하며, 입법 공백 발생 시 DNA 채취가 개정법 시행 전까지 불가해 범죄자의 DNA 정보를 추가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지난해 10월과 12월 총 2개의 DNA법 개정안이 대표 발의됐지만,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현재 계류 중인 개정안들의 세부 내용은 헌재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취지를 반영해 불복 절차 신설과 채취 대상자의 의견 진술 수용을 골자로 한다.

  한편,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 이 씨의 행적 등 추가 자료 분석에 주력하고 있으며, 유일한 목격자로 추정되는 버스 안내원을 수소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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