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그림책에서 동물이 주인공이면 반갑다. 등장인물에 굳이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줄거리를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종(種)과 언어를 초월하여 토끼와 곰, 호랑이가 아기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 읽는 어른의 마음도 순화된다. 그런 맥락에서 쿵푸팬더의 세계(사마귀가 호랑이와 대련하고 거북이가 무술 최고수인)를 동화적 허용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었건만. 갑자기 『쿵푸팬더 2』에서 주인공(포)이 “왜 나의 아빠가 거위인가?”하고 진지하게 고뇌하는 모습은 좀 뜬금없다. 어쨌든 거위는 순무상자 속에서 발견한 아기 팬더를 자기 아들로 삼아서 키웠음을 실토하는데, 누가 팬더의 친부모이며 어떤 이유로 상자에 넣어졌는지 거위도 모르기 때문에 포는 더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내 부모는 누구이며 왜 버려졌는가? 이 장면은 인간세계의 난제(難題)중 하나인 베이비 박스(baby box)를 떠올리게 한다.

  베이비 박스는 출산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자이다. 발견시까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자 안에 아이를 두고 가면 인근의 구조 가능한 시설에서 그 신호를 감지하도록 설치되어 있다. 베이비 박스와 같은 수단이 인도적 차원에서 민간의 주도하에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독일의 익명위탁(anonyme Kindesabgabe)이나 프랑스의 익명출산(l’accouchement sous X)처럼 제도화된 국가도 있다. 프랑스에서 시행되어 온 익명출산제도는 익명 또는 가명으로 출산하기를 원하는 임신여성이 출산 전부터 의료 서비스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여 아이뿐 아니라 산모의 건강과 생명도 보호하고자 한다. 독일에서도 이와 같이 비밀출산(vertrauliche Geburt)을 가능하게 하는 법을 제정하여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윤리적인 비난 및 제도의 정당성에 관한 논란(국가가 자녀의 유기를 방조하여 도덕성을 해이하게 한다는 등)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출산하는 산모와 그 아이를 보호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위에 소개한 제도가 신생아의 생명보호 및 여성의 자기결정권, 모성보호에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 있는데, 친생모(親生母)의 단독 결정에 따라 자녀가 영구적인 친자관계의 단절을 겪어야 하고 출생 정보에 접근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친엄마를 비롯한 모든 혈연관계로부터 떨어져 나올 뿐 아니라 영원히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실제로 프랑스에서 익명출산으로 태어나 입양되어 성인이 된 한 남자는 본인의 혈연관계를 알 수 있는 인적사항에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법규정이 유럽인권협약에 위반된다고 소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해 법원은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사실, 베이비 박스나 익명출산이라는 방법은 친생모의 프라이버시권과 자녀의 알 권리가 충돌하는 문제를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두 권리를 조화하기 위해서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독일에서는 법원의 판단하에 정보를 예외적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프랑스에서는 아직도 친생모가 정보공개를 원하지 않는다면 익명성이 보장된다) 여전히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출생의 비밀은 한국 드라마의 단골 주제이다. 꼬이고 꼬인 줄거리 속에서 주인공 주변에는 유난히 악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며 친부모 없이 자란 주인공의 역경이 강조되곤 하는데, 이처럼 친부모와 양부모를 이분법적으로 묘사하고, 친부모에게서 양육되지 않은 삶을 불행하게 그려내는 것은 시청률을 담보할지는 몰라도 옳은 방향은 아니다. 『쿵푸팬더 2』에서 주인공 포의 거위아빠는 아들에 대한 애정이 깊고 현명한 이상적 부모인 반면 오히려 공작(셴)의 부모는 아들과의 사이에서 이해도 소통도 없어 비극을 초래한다.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로서의 성정이 당연히 생겨나지 않으며, 자녀와의 관계 또한 오랜 시간에 걸친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것이기에 쿵푸팬더의 서사가 오히려 사실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럼에도 팬더의 깊은 고뇌, 그리고 자기처럼 생긴 종족을 만나고자 하는 절실한 바람을 보면, 베이비 박스의 현실적 기능과 제도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야기하는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