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네 피요르드는 노르웨이 여행의 정수다.
송네 피요르드는 노르웨이 여행의 정수다.

  노르웨이는 피요르드(Fjord)의 나라다. 가장 유명한 송네(Sogne) 피요르드부터 하르당에르(Hardanger), 뤼세(Lyse), 게이랑에르(Geiranger) 피요르드까지 국토의 많은 부분이 피요르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피요르드가 노르웨이고 노르웨이가 피요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르웨이를 여행하려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피요르드가 주는 절경(絶景)을 보기위한 것이 첫 번째일 것 같다. 천천히 움직이는 유람선 위에서 자연이 만들어 낸 기암괴석과 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장자(壯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된다. 내가 피요르드인지 피요르드가 나인지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자연을 보는 주체가 아니라 자연이 나를 자연의 일부로 너그러이 보고 있다는 느낌에 빠져든다. 노르웨이의 ‘높은 물가’가 주는 스트레스도 피요르드를 보고 있을 때만큼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피요르드는 보통 협만(峽灣)이라고 번역된다. 그러나 이 단어만으로는 정확히 이해가 안 된다. 협만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빙하의 침식으로 생긴 골짜기에 바닷물이 유입되어 형성된 좁고 긴 ‘내륙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빙하는 수백만 년 동안 축적된 눈의 결과물인데, 지진과 같은 지형의 변화 때문에 햇빛에 노출된 부분은 서서히 녹아내리게 된다. 녹아내리는 과정에서 주변의 산도 빙하와 더불어 침식이 이루어지게 된다. 침식으로 움푹 파인 U자형 골짜기는 해수면과 같게 되고 바닷물은 순식간에 유입되어 피요르드를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한 곳에서는 피요르드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거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송구스러워지는 피요르드를 목도하면서 인간의 짧은 수명 앞에는 가져다 붙일 수식어조차 없었다. 한 순간 살다 갈 인생인데 왜 인간은 더 많이 가지려고 그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것인지. 

  지난 여름 노르웨이를 찾는 모든 관광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최고라고 극찬하는 송네 피요르드를 여행했다. 송네 피요르드는 길이만 204킬로미터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무려 1,308미터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특징인 노르웨이의 지도는 마치 큰 치즈 덩어리에 누군가 아무런 생각 없이 마구 칼집을 내놓은 것 같다. 지도에서 봤을 때 가장 굵고 긴 칼집이 송네 피요르드가 있는 지역이다. 송네 피요르드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플롬(Flåm)에서 구드방엔(Gudvangen)까지 가는 페리에 탑승하는 것이다. ‘산간의 작은 평지’라는 의미의 플롬은 인구가 500명밖에 안 되는 작디작은 마을이지만 연간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관광객이 워낙 많이 찾다보니 근사한 호텔도 있고 수제 맥주를 만들어 파는 펍도 있고 야영(野營)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차가워서 발을 오래 담그고 있는 것도 힘든 협만의 물에 비키니 차림으로 다이빙을 해대는 플롬의 젊은이들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노르웨이 최대의 성수기인 7월에 가서 플롬에서 숙소를 잡을 수는 없었지만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에울란드(Aurland)의 숙소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즐길 수 있었다. 노란색이 분홍색이 되고 분홍색이 다시 보라색이 되는 송네 피요르드의 일몰 색깔은 가장 아름다웠던 도시의 ‘여행 순위’를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플롬에서 구드방엔까지 가는 여정은 피요르드 투어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피요르드 투어에 맞게 디자인된 페리에서 펄럭이는 노르웨이 국기는 한 나라의 국기라기보다는 피요르드를 상징하는 문양(文樣)같이 보였다. 페리가 움직이면서 선상에서 터지는 관광객들의 탄성은 각기 다른 언어의 음운(音韻)이었지만, 자연에 대한 경배를 한다는 차원에서는 동일한 언어였다. 바벨탑의 도전 이후, 인간의 언어는 달라졌지만 종국적으로는 하나의 연원(淵源)을 가졌다. 피요르드 투어의 선상에서 언어의 동질성을 비로소 느끼는 나는 둔감한 것인가 민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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