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오역 논란, 국내 콘텐츠 번역 실태
끊이지 않는 오역 논란, 국내 콘텐츠 번역 실태
  • 정예슬 기자
  • 승인 2019.10.07 01:05
  • 호수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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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국내 정식 발매된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이하 반다이남코)의 아이돌 육성게임 ‘아이돌마스터 밀리언라이브! 시어터 데이즈(이하 밀리시타)’는 발매 전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게임 홍보 문구로부터 오역 비판을 받았다. 이후 반다이남코는 해당 사항을 수정해 출시했으나 여전히 오역 논란이 계속됐다. 또한 박지훈 번역가는 2016년 개봉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오역으로 관객의 보이콧(부당한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특정 대상과의 거래를 중단하는 행동) 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처럼 △게임 △영화 △문학 등 콘텐츠 번역에서 오역 논란이 불거지며 오역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원문 그대로’ 번역 요구,
  오히려 오역 초래해


  밀리시타는 일본에서 지난 2017년 스마트폰용 게임으로 출시됐으며, 국내에서도 정식 발매 전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반다이남코 측은 지난 8월부터 한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 밀리시타를 정식 발매했다.

  그러나 밀리시타는 출시를 앞두고 홈페이지에 공개한 홍보 문구로 인한 오역 비판을 받았다. △오빠 △여자아이답게 △다이너마이트 바디 등의 일본어 원문 문구가 각각 △프로듀서 △아이돌답게 △멋진 맵시로 번역됐기 때문이다. 2년간 일본어판 게임을 즐겨왔던 일부 유저들은 밀리시타 네이버 공식 카페를 통해 “해당 번역이 원문과 다른 의미로 변해 캐릭터의 특성을 파괴했다”며 항의했다.

  또한 이들은 반다이남코 측에 원문 그대로 번역할 것을 요구하며, ‘우아한’으로 의역한 ‘여자력’을 원문에 따라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다이남코는 홈페이지 홍보 문구의 번역을 수정했지만, 게임 내 번역은 수정하지 않아 해당 유저들 사이에서 오역의 화두에 올랐다.

  의역에 대한 반발이 재차 일자 반다이남코는 팬들의 요구를 수용해 원문 그대로 번역을 진행했다. 그러나 일부 유저 사이에서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번역에 동의하지 않으며 최초 번역을 지지한다”는 여론이 조성됐다. 나아가 △반다이남코 코리아 △게임물관리위원회 △공식 카페 등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게임에 등장하는 노래 제목에서는 오히려 원문 그대로 번역해 오역이 발생했다. 번역 전 노래 제목은 ‘남빛 금붕어와 붓꽃’이었으나, 원문 그대로 번역을 거치며 ‘유리색 금붕어로 꽃창포’로 수정됐다. 오역으로 지적된 남빛은 원문 그대로의 번역을 따를 때 ‘유리색’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남빛은 유리의 투명한 빛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리와 같은 광택이 나는 푸른 ‘청금석’의 색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또한 유리색은 일본어 단어를 한국어 발음으로 직역한 것일 뿐,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 전문 번역가를 겸하고 있는 우석대 역사교육과 박상익 교수는 “단어에도 국가나 문화권마다 다른 맥락이 존재한다”며, “맥락을 고민하지 않은 채 원문 그대로 만을 중시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오역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캐릭터 성격, 영화 의도 파괴한 오역…
  번역가 보이콧으로 이어지기도

CGV아트하우스의 ‘세상을 바꾼 변호인’ 영문 원본(좌)과 홍보물(우).
CGV아트하우스의 ‘세상을 바꾼 변호인’ 영문 원본(좌)과 홍보물(우).

  오역은 게임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 CGV아트하우스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영화의 주제를 벗어난 번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서 두 번째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오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일생을 담은 영화다. 그러나 포스터 원본에서 △정의(justice) △지도자(leader) △행동가(activist) 등 주체적인 면모를 드러낸 문구는 국내에 수입되면서 △독보적인 스타일 △시대의 아이콘 △핵인싸 △데일리룩 등으로 바뀌었다. 그뿐만 아니라 CGV아트하우스는 ‘영웅적인(heroic)’을 ‘러블리한 날’로, ‘영감을 주는(inspiring)’을 ‘포멀한 날(정장을 입은 날)’로 오역했다. 이에 인스타그램 댓글 등을 통해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하기는커녕 주인공이 외모와 유행에만 신경 쓰는 여성인 것처럼 표현했다”는 항의가 빗발쳤고, 이후 CGV아트하우스는 게시물을 삭제했다.

  박지훈 번역가는 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오역으로 인해 보이콧 운동을 초래했다. 박 번역가는 악당 역 할리퀸의 일부 대사를 △“봐주시면 안 돼요?” △“왜요?” △“이 오빠 맘에 들어” 등 존댓말을 사용한 대사로 번역했다. 이에 관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연인 조커를 제외한 타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상대하지 않는 할리퀸의 캐릭터 특성과 맞지 않으며, 그로 인해 몰입감을 깨뜨린다”고 비판했다. 이후 박 번역가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전개됐으며, 해당 대사는 이후 수정됐다.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중 박지훈 번역가가 오역한 장면.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중 박지훈 번역가가 오역한 장면.

  박 번역가는 지난해 4월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어벤져스3)’ 번역에서도 오역 논란이 일었다. 박 번역가는 주연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 “우리는 엔드게임에 진입했어(We‘re in the endgame now)”를 “이제 가망이 없다”고 번역했다. 그러나 엔드게임은 체스 용어 중 하나로 최종 단계를 의미하며, 영화 시리즈 내 갈등 상황이 최고조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해당 번역은 지난 4월 개봉한 어벤져스3의 속편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어벤져스4)’으로 이어지는 흐름 이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대사를 완전히 다른 뜻으로 해석한 셈이다. 지난 5월 어벤져스4 조 루소 감독과 앤소니 루소 감독은 팟캐스트 방송 ‘해피새드 컨프쥬드’에 출연해 “닥터 스트레인지 대사가 한국에서는 ‘가망이 없어’로 번역됐다고 하더라”라며, “그럼 한국에서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어벤져스: 가망이 없어’가 되냐”고 언급했다.

  이로 인해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박지훈 번역가의 작품(번역)참여를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원어 어감 살린 번역, 
  관객 몰입도 증대


  원어의 어감을 살린 양질의 번역으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번역도 있다.

  지난 1949년 개봉한 영화 ‘카사블랑카’는 “당신을 보고 있다(Here’s looking at you, kid)”는 대사를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로 번역해 유명 명대사로 회자된다. 이처럼 원문의 의미, 느낌을 직역한 것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한 번역을 ‘초월 번역’이라고 한다. 지난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초월 번역의 또 다른 예다.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은 “놀라운 번역에 의해 이 기묘하고 빛나는 작품이 영어로 제 목소리를 완벽히 찾았다”며, 번역이 수상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 역시 스페인어 번역 이후 원작의 성격이 잘 재현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11일(수) 한국문학번역원 측은 “제17회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로 한강 ‘소년이 온다’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윤선미, 김언수 씨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번역을 맡은 미국인 달시 파켓 영화평론가는 한국적 요소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낸 번역으로 해외 흥행에 기여했다. 이로써 기생충은 지난 5월 한국 영화로서 최초로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달시 파켓은 ‘짜파게티’와 ‘너구리’ 두 종류의 라면 이름을 조합한 합성어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이라는 신조어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석(관상용의 자연석)’은 풍경(Landscape)과 돌(Rock)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합쳐 ‘Landscape Rock’으로 표현했다. 이외에도 ‘서울대’는 영국 잉글랜드에 있는 공립 종합대학 ‘옥스퍼드대’로, 한국인이 주로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은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으로 번역하는 등 한국적 요소를 번역하는 데 힘썼다. 달시 파켓은 한국적 정서를 잡아내 번역했다는 호평에 대해 “한국에서 20년 정도 살면서 번역 과정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다”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결국 혼자 하는 일도 아니다”고 밝혔다.

  과도한 의역을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학평론가를 겸하고 있는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조재룡 교수는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이 과도한 의역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특히 ‘폭력적이고 단순한 남편’을 ‘우유부단하고 고민에 휩싸인 남편’으로 번역한 것은 “과도한 의역일 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돼 인물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고 비판했다.

디즈니 영화 ‘Frozen’은 국내에서 ‘겨울왕국’으로 번역됐다.
디즈니 영화 ‘Frozen’은 국내에서 ‘겨울왕국’으로 번역됐다.

  한편, 영화가 상영되는 △나라 △언어 △관객 특성을 고려한 의역의 효과는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겨울왕국’의 원제는 ‘Frozen’으로 ‘얼어붙은’으로 직역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의 어감과 어린이 관객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 등을 고려해 겨울왕국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개봉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또한 ‘Night at the Museum(박물관의 밤)’을 박물관이 살아있다로 의역해 많은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잇따른 오역, 
  콘텐츠 번역이 나아갈 길은


  이처럼 매년 오역 문제가 제기되며, 오역 논란에 휩싸인 번역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4)’ 배급을 맡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는 영화 엔딩 크레딧에 번역가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소비자가 돈을 지불한 창작물에 대해 번역 등 창작물의 기본 정보를 알려야 한다며, 소비자의 알 권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측은 “번역에 대한 공식 입장은 없으며, 번역가에 대한 정보도 없다”라며, 번역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비쳤다. 지난 2일(수) 개봉한 영화 ‘조커’의 번역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에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측은 “번역가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해 6월 ‘외화 번역가 실명 공개 규정을 만들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는 등 번역가 실명 공개에 대한 청원이 잇따랐다.

  이뿐 아니라 오역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나 법적 처벌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1월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정부 차원의 번역 지원을 요구하는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재했다. 청원인은 위태로운 국내 번역 시장을 대체할 △번역청 △국립번역원 △번역위원회 등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번역 지원이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은 번역 지원 예산을 기존 연 9억 원에서 18억 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예산을 늘리는 성과를 거뒀지만, 이런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의 조치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청원.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된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청원.

 

  한편, 국내 번역 시장에서의 번역 환경이 열악해 오역의 빈도가 잦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번역가들은 △부족한 번역 시간 △정보 부족 △짧은 검수 기간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제작 비용 최소화를 위해 유통사들이 단가가 저렴한 외주 업체에 의뢰를 맡기거나 속도에 비중을 두는 경우, 검수 기간이 짧아져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콘텐츠가 출시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게임 ‘어쌔신 크리드’의 번역가는 “번역이 잘못됐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검수 기간이 짧은 탓에 수정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라고 호소했다.

  또한 유통사나 영화 배급사 측에서 콘텐츠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번역가에게 최소한의 정보를 주는 경우도 열악한 환경에 일조하고 있다. 이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오역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도 번역가는 “영상 없이 대본만 보고 작업하라는 것은 영화 배급사들이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며, “번역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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