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월) 유명 연예인 故최진리(설리) 씨가 세상을 떠났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최 씨를 추모하는 글이 이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언론이 최 씨 생전에도 악의적 논란을 조장하는 데 기여했으며, 사망 후에도 사망 사실을 윤리 의식 없이 보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언론이 가해자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민주언론시민연합회이나 여러 매체에서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 방식에 대한 분석과 논평이 다수 게재됐다. 또한 언론에서 파생된 악플에 대한 논의도 전개됐다.

 

  논란 만드는 무차별적 보도, 무책임 저널리즘

  경향신문은 지난달 15일(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빅데이터 분석 사이트 ‘빅카인즈’를 통해 최 씨 생전 1년 동안 보도된 관련 기사 1,666건을 키워드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악플(2,264회)’이었다. 이는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단어인 ‘인스타그램(841회)’보다 약 2.5배 이상 많은 수치다. 다음으로는 최 씨가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인 ‘진리상점(765회)’과 ‘SNS(557회)’, ‘노브라(538회)’ 순으로 많이 언급됐다. 빅카인즈는 자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별 기사에서 특정 키워드를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는가를 출력해 ‘가중치’라는 결과치를 제공했다. 가중치가 가장 높은 키워드는 ‘인스타그램(284.12)’이었으며, ‘악플(196.38)’, ‘SNS(165.99)’, ‘노브라(128.58)’, ‘JTBC2 악플(126.12)’ 순이었다. 빅카인즈는 “다른 연예인과 비교했을 때도 악플이나 SNS를 언급한 기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 씨가 SNS에서 신체 일부를 노출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언론사들은 이를 바로 보도하고, 이에 달린 악플을 이용해 다시 기사를 생산했다. △‘이슈메이커 설리, SNS 방송 노출 논란→이틀째 갑론을박 ing’ △‘설리 방송노출논란, 3일째 시끌→설리 논란 또 한 번 난리’ △‘설리, 라이브 노출 그 후…아쉬움 남는 당당함’ 등의 제목으로 악플을 그대로 전하며 최 씨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들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아이돌로지 미묘 편집장은 “연예인을 향한 악플을 무분별하게 기사에 담는 것은 악플러들의 발언을 가치 있는 의견인 것처럼 믿게 만들고 폭력적인 시선을 재생산하는 일”이라며 “사실상 언론이 악플을 달 기회를 제공하고 장을 열어줬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언론의 악플 중계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더 가학적인 댓글을 유도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김성철 교수는 “연예인의 SNS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악플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것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해 또 다른 악플을 불러오는 동기가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김언경 사무처장도 “악플의 연쇄 구조는 연예인에게는 일단 걸리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개미지옥’”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화) 민언련이 최 씨의 생전 6개월 치 관련 보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 씨와 관련된 내용을 여러 매체가 선정적으로 부각하거나 최 씨의 SNS의 내용을 무차별적으로 기사화하는 보도 행태도 지적됐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언론이 논란이 아닌 것에 ‘논란’ 딱지를 붙이기도 하고, 악플을 그대로 가져와 기사에 덧붙이는 등 논란을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실제 지난 4월 최 씨가 SNS에 올린 사진에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자, 일부 매체에선 사진을 가져다가 ‘노브라 논란’으로 보도했다. 연예·스포츠 매체인 ‘MK스포츠’나 ‘스포츠서울’은 ‘“시선 강간 싫다”…설리, 그럼에도 미착용 셀카 공개’, ‘“시선 강간 싫다” 설리, 논란 후에도 속옷 미착용 사진 공개’ 등과 같은 제목으로 SNS 사진을 보도했다. 일간지인 세계일보도 ‘‘노브라’ 지적에 “‘시선 강간’ 싫다”던 설리, 또 속옷 미착용 근황 공개’와 같은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했다.

  민언련은 이러한 최 씨의 보도에 대해 언론들이 대상화의 책임을 그에게 떠넘기는 듯한 제목을 달았다고 비판했다. 민언련은 “이는 개인의 자유이며, 여성의 건강권에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행보이자 활동, 또는 삶의 방식”이라며 “언론은 그의 옷차림에 대해서 집착하며 구설수에 올릴 어떤 권한도 없음에도 수시로 그의 옷차림을 기사화했다”고 비판했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안 지키는 언론

  지난달 14일(월) 최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보도에서도 언론들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에서 마련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지키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언론사가 자살 관련 소식을 보도할 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기사 제목으로 ‘자살’ 대신 ‘사망’, ‘숨지다’ 표현 사용 △구체적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보도 지양 △관련 사진 및 동영상 사용 유의 △자살 미화, 합리화 지양 및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와 예방정보 제공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 사생활 존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최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4일(월)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을 지켜달라는 이메일을 기자들에게 발송했지만, 권고는 지켜지지 않았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는 ‘자살 동기를 단순화한 보도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자살은 단순화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인들로 유발되기 때문에 표면적인 자살 동기만을 보도할 경우 잘못된 보도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유사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경제의 ‘설리 사망, 포털 연관검색어엔 ‘노출’ 이슈...결국 악플이 문제였다’ 기사와 한국일보의 ‘여성 혐오 등 악성 댓글 못 견뎠나…배우 설리, 자택서 숨진 채 발견’ 기사 등에서는 고인의 사망 이유를 거의 악플로 확정 짓고 있다. 

  또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서는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일보는 ‘“힘들다, 괴롭다” 설리 노트 마지막 장에 적혀있던 말’ 기사를 통해 고인의 메모 일부를 기사로 옮겼다. 

  앞서 최 씨의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유가족이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전하며 빈소와 발인 날짜 등을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한다’라는 부분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연예·스포츠 매체는 최 씨의 빈소 위치를 ‘단독’으로 보도하거나 고인의 시신이 운구 차량에 실리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국민일보와 서울신문 등은 최 씨의 신체 노출 논란 당시 사진을 사용했다. 이에 민언련은 지난달 14일(월) 논평을 통해 “살아 있을 당시에도 언론의 클릭 장사에 자주 희생되던 고인의 인격은 숨진 이후에도 한낱 클릭 장삿거리에 불과하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최근 논란이 됐던 사진을 쓰겠다는 발상을 한 기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이는 저널리즘의 측면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도의적 차원에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몰상식한 형태”라고 논평했다. 

 

  포털과 언론

  언론사들이 이렇게 특정 사안에 있어서 무차별적으로 보도를 하는 이유는 포털에서 어뷰징을 통해 수익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어뷰징이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검색을 통한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동일한 제목의 기사를 지속해서 전송하거나 인기 검색어를 올리기 위해 클릭 수를 조작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언론사는 어뷰징을 통해 조회 수를 높이고 광고 노출 빈도를 높여 수익을 창출한다.

  이러한 사례를 잘 보여주는 것이 ‘토스’의 실시간 검색어 마케팅에 대한 언론 보도다. 토스는 매일 키워드를 ‘행운퀴즈’ 페이지 정답으로 제시했고, 이용자가 해당 키워드를 네이버 검색 후 자사 앱에 입력하면 보상금을 주는 방식을 취했다. 이에 따라 언론사들은 ‘행운퀴즈 정답’을 담은 어뷰징 기사를 양산했다. 이와 관련해서 기자협회보가 ‘토스 행운퀴즈’를 키워드로 주요 △종합일간지 △경제지 △방송사 32개 매체의 관련 기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20일(수)부터 지난달 29일(화) 오후 2시까지 총 1,161건의 관련 기사가 보도됐다. 

  김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직접 발로 뛰어 확인해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닌 인터넷을 뒤져 쉽게 기사를 생산하는 보도 관행이 엿보인다”며 “독창적인 기사를 쓰는 대신 클릭 수를 유도하며 서로 경쟁적으로 베끼기만 하는 언론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의 김준일 대표는 “클릭을 유도해 수익으로 연결되는 어뷰징을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지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들의 어뷰징 문제의 해결책으로 포털을 통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언련에서는 지난달 14일(월) 논평에서 “뉴스의 유통을 맡는 포털 또한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며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다룬 뉴스들을 전할 때 언론이 이를 가지고 장사를 할 수 없도록 검색어 노출을 제한하거나 부적절한 사진 등이 사용되었을 경우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포털은 규제에 부정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뉴스 제휴 매체와 관련한 제재 심사를 ‘뉴스제휴평가위원회’라는 외부 기관에 위임했다. 네이버에서는 “제휴평가위원회 결정과 별도로 포털이 검색어 제한 같은 직접적인 불이익을 줄 수는 없다”며 “해당 언론사가 고쳐야 할 부분”이라고 전했다.

 

  악플 규제도 함께 논의돼...

  언론이 악플을 기사화해 더 가학적인 댓글을 유도하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악플 자체의 규제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최 씨의 사망 다음 날인 지난달 15일(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진리 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청원글이 등장했고 2만 명 이상의 청원 동의를 얻었다. 해당 글에서는 수많은 연예계 종사자들이 악플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댓글 실명제를 시행해주기를 당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이나 SNS에 악플을 달면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명예훼손죄와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소송에 가면 처벌은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선 악플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형사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YK법률사무소 김지훈 변호사는 “대부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는 약식 기소되고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적용 수위가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터넷 실명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16일(수)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5%가 인터넷 댓글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준실명제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지난달 25일(금) 인터넷 준실명제을 도입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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