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2006) - 소유한다는 것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2006) - 소유한다는 것
  • 이지은 교수 (법학과)
  • 승인 2019.11.04 01:01
  • 호수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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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유권(所有權)이란 어떤 물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전면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권리이다. 여타의 재산적 권리에 부연되는 구체적이고 건조한 설명과 비교해볼 때 소유권에 대한 수식은 화려하다 못해 현학적이다. 소유권은 혼일(混一)하고 탄력적이고 항구적(恒久的)이다. 소유권은 배타적이고 대세적(對世的)이며 가장 완전한 물권(物權)이다. 설령 소유권에 대해 모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온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사람을 안도하게 하는가. 

  영화 『카모메 식당』은 식당주인(사치에)과 우연히 그녀와 합류하는 인물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보여준다.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의외로 이 영화에는 물건과 소유권에 관한 에피소드가 꽤 섞여 있다. 첫째, 비행기에서 짐을 잃어버린 관광객(마사에)의 이야기이다. 공항에서 짐을 못 찾고 나온 마사에는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여행가방을 기다리며 카모메 식당을 오간다. 이 때 여행가방은 누구의 것인가? ‘잃어버렸다’고 표현되지만 가방은 여전히 마사에의 것이다. 소유권에 의한 지배는 관념적인 것이기에 현재 마사에의 손을 떠나 비행사가 보관 중인 가방도 마사에의 소유에 속한다. 

  둘째, 커피 내릴 때의 주문을 가르쳐주던 아저씨 손님이 도둑질을 하게 된 사연에서, 주방 뒤켠에 우두커니 놓여 있던 원두 분쇄기는 누구의 것인가? 원래 이 아저씨는 사치에가 오기 전에 카모메 식당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사치에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 제3자로부터 가게를 인수할 때 이 원두 분쇄기도 같이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도둑을 엎어치기로 잡은 사치에가 아저씨를 알아보고는 “물건을 두고 갔으면 말을 하지”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아저씨가 아니라 사치에의 소유이다. 동산(부동산이 아닌 물건)을 현재 점유하는 자를 권리자로 믿고 거래한 자가 과실 없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선의취득규정(민법 제249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밤에 몰래 가져가려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석이 무색하게도 영화 속 여인들은 물건의 소유에 별 관심이 없다. 마사에는 여행가방을 받고도 무엇이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며, 결국 바닷가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돌아온다. 손님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싶어 할 뿐 식당운영이 주는 경제적 이득에는 관심이 없는 사치에는 아저씨에게 원두 분쇄기를 미련 없이 줘 버린다. 소위 ‘먹방영화’에 속하는 이 영화의 요리 장면에서 비현실적으로 깨끗하게 반짝이는 예쁜 냄비와 그릇들은 오로지 요리의 완성에만 헌신하고 집중하는 듯 느껴진다. 식당주인에게 조리도구의 가치는 사용에만 있을 뿐 교환적 가치는 무의미한 것 같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유한다는 것은 물건을 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내 것을 계속 지니고 늘려간다는 것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은 보편적이기에, 이러한 욕구를 공익적 관점에서 제한하려고 하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 종래 대도시의 택지(宅地)소유를 200평으로 제한하였던 법률이 시행된 적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 법률을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재산권은 개인이 각자의 인생관과 능력에 따라 자신의 생활을 형성하도록 물질적·경제적 조건을 보장해 주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재산권의 보장은 자유실현의 물질적 바탕을 의미”한다고 하였다(1999. 4. 29. 94헌바37 외66건(병합) 전원재판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담백하게 누리는 일상은 소유에 얽힌 욕망으로부터 초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익숙한 세상을 버리고 핀란드 어느 동네의 식당에 정착한 여인들의 행복은 보통사람이 닿기에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맛있는 음식과 탐나게 예쁜 식기들을 보며 그들의 행복을 동경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뭔가를 먹고 나면 본래의 나로 돌아온다. 무엇이 ‘나의 것’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나의 이름, 나의 자리, 나의 집. 소유격이 불러일으키는 그 특별한 감정이라니. “마침내 내가 누구의 것이 되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그것은 참으로 달콤합니다” 소설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디가 쓰는 마지막 편지도 이렇게 끝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사람은 물건이 아니라서 소유권의 객체가 될 수 없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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