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모든 것(2012) - 파경(破鏡)과 책임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 파경(破鏡)과 책임
  • 이지은 교수 (법학과)
  • 승인 2019.11.11 00:00
  • 호수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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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임수정)와 남편(이선균)은 유학시절 일본에서 만났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탁자 아래서 첫눈에 반해 연애하고 결혼한 부부는 현재 다정한 말 한마디 없는 사이다. 아내는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기 바쁘고 남편은 아내를 피하기에 바쁘다. 아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남편은 마성의 카사노바인 옆집 남자(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남녀가 혼인을 결심하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지만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이유는 실로 다양하다. 그런데 부부가 서로 이혼에 합의하지 못했을 때는 파탄의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파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수많은 파탄의 원인 중 배우자의 부정(不貞), 유기(遺棄) 등 제한된 경우에만 이혼이 허용되기 때문이다(민법 제840조). 또 그러한 사유가 있어도, 상대방 배우자의 유책(有責)행위를 재판과정에서 주장하고 증명해야만 비로소 이혼이 가능하다(이를 ‘유책주의’라 한다. 반면 외국에서는 혼인이 파탄되었다는 객관적인 사실만 있으면 이혼이 허용된다는 ‘파탄주의’로 선회하고 있다). 그러므로 도저히 부부공동체로서의 삶이 불가능한 정도의 파경에 이른 부부라 해도 책임 없는 배우자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형식적 부부관계라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 영화 속 남편의 계획은 ‘찌질하고 한심한, 헤어지자고 말할 용기도 없는 겁쟁이’ 이상의 비난을 받을 만하다. 아내는 남편과 이혼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협의 이혼도 재판상 이혼도 불가능한 상황(아내의 드센 성격과 부정적인 언행, 그리고 불임(不姙)은 재판상 이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이었지만, 옆집 남자가 아내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때는 아내의 부정한 행위를 이유로 남편이 이혼 청구를 하여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것(민법 제840조 제1호)이기 때문이다. 

  파탄에 이른 혼인관계에서 이미 냉담해진 배우자를 감내하고 혼인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기나 보복적인 감정도 있겠지만 배우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어 이혼을 반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배우자가 쫓겨나는, 소위 축출(逐出)이혼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대법원이 아직까지 유책주의를 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파탄주의의 한계나 기준, 그리고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적 책임 등에 관해 아무런 법률 조항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아니하고 있는 데에는 중혼관계에 처하게 된 법률상 배우자의 축출이혼을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주인공의 아내는 누구보다 의견이 강하고 거침없이 말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잘 살펴보면 상황은 그와 다르다. 본래 작가를 꿈꾸었고 요리를 전공했던 그녀는 결혼 후 전력을 다해 식탁을 차리지만 남편은 진저리를 친다. 7년 동안 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내의 약점으로 인식된다. 남편을 내조하고자 참석한 부부동반 파티에서 ‘맞벌이도 아닌데 화장을 짙게 한’, 그리고 ‘집에 있으면서 애도 안 낳는’ 주부로 격하된다. 코미디 영화의 성격상 허용되는 과장된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아내 자신의 생각 속에서도 불안이 엿보인다. 집안의 침묵을 견딜 수 없어서 청소기를 돌렸다는 고백이나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 상황이 어쩌면 아내의 스트레스의 원인이었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렇듯이 파탄의 책임은 어느 정도 상호적이겠지만, 영화 속 부부와 같은 구도에서는 남편이 약속을 깨면 아내의 ‘안전한 집’이 무너진다. 이 영화는 구구절절한 사연과 우연 속에 행복한 결말로 가지만(아내는 너무 싱겁게 남편을 용서한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파경 혹은 봉합된 파경으로 가는 부부도 많다. 아내가 본디 원했던 ‘침묵을 아이 울음소리로 채우는’ 방법은 예측불허의 연속된 이벤트로 권태를 깨뜨릴 수는 있겠으나 상황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법원이 고수하는 유책주의는 그녀가 원치 않는 이혼을 막아줄 뿐 파탄된 혼인관계를 법의 영역에서만 존속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국 자기 성찰, 부부 상담 같은 것으로 귀결될 문제인가? 여러모로 이 영화는 이혼법의 오랜 숙제 중 하나인 전업주부와 가사노동의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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