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평점 테러 논란, 평점 게시판의 현주소
무분별한 평점 테러 논란, 평점 게시판의 현주소
  • 김이슬 기자, 정예슬 기자
  • 승인 2019.11.11 00:00
  • 호수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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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기능 잃은 영화 평점 게시판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영화 추천 사이트 ‘왓챠’ 등의 영화 평점 게시판에서 지난달 23일(수)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평점 테러’ 현상이 발생했다. 평점 테러는 영화 관람 여부와 관계없이 고의로 낮은 평점을 부과해 평점을 낮추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 9월 ‘82년생 김지영’에 배우 정유미 씨의 캐스팅이 공식 보도되자 네이버 영화 평점 게시판에는 개봉 전부터 일부 네티즌에 의한 평점 테러가 이뤄졌다. 해당 영화의 네이버 영화 관람객 댓글 4만 783건 중 2만 6천 475개의 공감을 얻은 댓글은 ‘본 사람만 평점 달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며 영화를 보지 않고 이뤄지는 악의적인 평점 테러를 지적했다. 또한, ‘82년생 김지영’ 개봉 전인 9월 말 기준 네이버 영화 평점이 3.7이었던 것에 대해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평점을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어 왓챠에서 ‘82년생 김지영’의 평점은 3.2로 최저점 0.5점과 최고점 5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양상을 보였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평점을 부여한 탓에 평점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에 영화를 본 사람만 평점을 매길 수 있도록 영화 평점 게시판의 평점 부여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네이버 명대사 코너에 게시된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지 않는 가짜 명대사.
네이버 명대사 코너에 게시된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지 않는 가짜 명대사.

  영화 평점 게시판은 영화에 대한 감상평과 만족도 평가를 통해 △정보제공 △감상 공유 △표현의 창구 등의 기능을 해왔다. 그러나 평점 테러 현상이 잇따르며 공격과 혐오의 수단으로 변질돼 본래 목적을 잃고 악용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의 네이버 영화 평점 게시판 영화 속 명대사를 게시할 수 있는 ‘명대사 코너’에는 ‘애 본다는 핑계로 집에서 놀고 있네’, ‘불은 남자들이 끄는 거죠’ 등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지 않는 가짜 명대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잠재 관객의 영화 관람 여부에 영향을 미치고 영화 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된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온라인 평점 제도 도입의 취지나 방향성은 옳다고 보지만, 콘텐츠를 멋대로 재단하고 불합리하게 대중을 호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혐오로부터 비롯된 평점 테러

  김헌식 문화평론가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에 가해진 평점 테러는 페미니즘(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에 반발하며 일어난 백래시 현상이다. 백래시 현상은 정치·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82년생 김지영’의 원작은 지난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로, 지난 2017년 6월 영화화가 결정됐다. 그러나 원작이 여성에 대한 차별 등의 내용을 담은 소설이라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각종 포털사이트의 영화 평점 게시판에서 평점 테러가 발생했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82년생 김지영’의 영화화를 반대하는 청원이 게재되기도 했다. 지난 8일(금) 기준 관람 여부와 관계없이 평점을 부여할 수 있는 네이버 네티즌 평점은 10점 만점 중 6.62이다. 이때 성별 기준 평점은 남성 평균 2.76, 여성 평균 9.51이다. 반면 실제 영화를 관람한 후 관람객들이 작성한 평점인 관람객 평점은 9.33이며, 이때 성별 기준 평점은 남성 평균은 8.97, 여성 평균은 9.47로 나타났다. 이러한 평점 수치를 통해 네티즌과 실제 관람객간의 평점의 격차도 심하지만 성별 간에도 무분별한 평점 테러 현상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지난 8일(금) 기준 ‘82년생 김지영’의 네이버 평점은 네티즌 평점 6.62, 관람객 평점 9.33이다.
지난 8일(금) 기준 ‘82년생 김지영’의 네이버 평점은 네티즌 평점 6.62, 관람객 평점 9.33이다.

  지난 2018년 개봉한 영화 ‘메가로돈’ 또한 평점 테러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는 여성 혐오적 발언을 남성에게 반사 적용하는 ‘미러링’을 사회운동 전략으로 삼아 주목 받은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와 영화 제목이 비슷하다는 사유에서 비롯돼 영화 평점 게시판에서는 내용과는 관련 없는 혹평이 이어졌다. 지난 8일(금) 네이버 영화 평점 게시판 기준 관람객 평점이 7.53인 반면 네티즌 평점은 5.85에 그쳤다. 네티즌 평점은 관람객 평점과 달리 영화를 관람하지 않고 평점을 부여할 수 있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영화에 악의적으로 평점 테러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대표적이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내 상황을 전세계에 알린 독일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는 개봉 전부터 일부 네티즌에 의해 평점 테러를 당했다. 네이버 영화 평점 게시판에는 최저점 1점과 함께 “5·18은 폭동이다”, “폭동을 미화하는 선동 감성팔이 영화” 등의 평가가 게시됐다.

  그러나 평점 테러의 대상이 됐음에도 일부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등 영화 흥행에 성공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 5일(화) 기준 누적 관객 267만 5천여 명으로 예매율 2위며, 지난 8일(금) 기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집계한 ‘상영영화 일간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또한 기준 네이버 실관람객 평점은 9.33점, CGV의 골든에그 지수(100%가 만점인 실관객 평가)는 96%에 달했으며, 롯데시네마 실관람객 평점은 9.0점을 기록했다. 이어서 지난달 25일(금) 온라인 조사업체 ‘PMI’가 20대에서 50대 사이 남녀 5천 명을 대상으로 한 ‘금주 가장 보고 싶은 영화 조사 결과’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이 22.1%로 1위를 차지했다.

  영화 ‘걸캅스’와 ‘캡틴 마블’은 젠더 간 갈등으로 평점 테러를 겪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걸캅스’는 불법 촬영 범죄를 척결하는 두 여성 경찰을 주연으로 한다는 점 때문에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평점 테러를 당했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캡틴 마블’은 주연 배우 브리 라슨의 “위대한 페미니스트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돼 평점 테러의 대상이 됐다. 김 문화평론가는 “걸캅스의 경우 여성주의 영화로 알려졌지만, 내용적 측면에서 양성평등적인 면이 드러난다”며, “영화가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점이 공유되면서 평점 테러는 점차 사라지는 수순을 밟고 있다”고 밝혔다.
 

  작품 외적인 이유로
  평점 테러 이뤄지기도

 
네이버 웹툰 ‘이엑스피(EXP)’의 기소령 작가는 과거 발언 논란으로 별점 테러를 당했다. 기 작가는 과거 개인 블로그에 일본어 교수의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이해하는 듯한 게시물을 게재한 것이 그 이유다.

  이에 네티즌들은 기 작가의 과거 발언을 비판하는 댓글을 이어가며 지난 3일(일) 게시된 이엑스피 1화에 별점 테러를 가했다. 이엑스피는 21세기 도시형 기사를 다룬 내용으로 해당 작품은 작가의 과거 발언과는 관계가 없다. 이후 지난 4일(월) 기 작가는 개인 블로그에 사과문을 통해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독도가 한국 땅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일본어 선생님과의 독도에 관한 논쟁에서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점에 대한 반성과 독도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의 내용이었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됐던 게시물은 현재 삭제된 상태며, 이엑스피의 별점은 현 시점 기준 2.02에 불과하다.

  지난 2월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송지형 작가의 ‘버그’에 대한 별점 테러는 전작의 연재중단에서 비롯됐다. 전작 ‘블레이드 노트’ 연재 당시 웹툰에 등록됐던 공지에 따르면 송 작가와 윤준식 작가가 함께 연재한 웹툰 ‘블레이드 노트’는 지난 2016년 두 작가의 의견 충돌로 연재가 중단됐다. 독자들은 송 작가의 해명을 요구하며 신작 버그에 평점 테러를 가했다. 신작 공개 당시 버그의 별점은 지난 2월 기준 3.36이었다. 이에 송 작가는 지난 2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블레이드 노트의 연재 중단에 관한 해명문을 게시했다.

  배우 한효주 씨의 남동생이 ‘故김 일병 자살 사건’의 가해자로 알려지며, 해당 사건의 여파는 한 씨가 주연 배우로 참여한 2015년 개봉 영화 ‘쎄시봉’의 평점 테러로 이어지기도 했다. 故김 일병 자살 사건은 지난 2013년 공군 성남비행단 단장 부관실에서 근무하던 김 일병이 부대 내 가혹 행위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네티즌들은 한 씨와 김 일병 사건을 연관 지어,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평점 테러를 가했다.

  이와 같이 작품 외적인 이유로 평점 테러를 가하는 것에 대해 권혁중 문화평론가는 “일부 네티즌들이 자신만의 사회적 정의의 판단을 평점 테러라는 도구를 이용해 심리적 판단을 작위적으로 내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사이트, 평점 시스템 변경하기도
  관객 스스로 판단하는 문화 동반돼야…

 
평점 테러는 관객의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들이 포털을 통해 영화 정보를 얻는데 이때 ‘한줄평’을 통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기도 한다.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강동영 팀장은 “포털사이트 평점은 영화 정보를 찾을 때 대중이 가장 손쉽게 거치는 과정이기에 중요하다”며 “특히 개봉 이후 매겨지는 평점은 영화의 재미를 나타내는 척도이기 때문에 관객이 유심히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평점 시스템이 개편된 로튼토마토 페이지.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네티즌이 작품에 코멘트나 리뷰를 남길 수 없도록 변경됐다.
평점 시스템이 개편된 로튼토마토 페이지.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네티즌이 작품에 코멘트나 리뷰를 남길 수 없도록 변경됐다.

  지난 2월 대표적인 해외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는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평점 시스템을 변경했다고 공지했다. 이는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캡틴 마블에 대해 개봉 전부터 국내외에서 발생한 성차별적인 비난이 평점 테러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로튼토마토는 평점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관객 평점 시스템을 개편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는 해당 작품에 코멘트나 리뷰를 남길 수 없도록 했으며, 관객들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보고 싶다(want to see)’ 점수는 기존의 백분율 점수에서 관객의 숫자를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변경됐다.

  우리나라 역시 영화 ‘82년생 김지영’ 개봉 전후로 무분별한 평점 테러를 막기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네이버는 지난달 1일(화)부터 개봉 전 영화에 대해 평점을 조회하거나 등록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변경했다. 네이버 측은 “영화 서비스에서 신뢰도 높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봉 전 영화에 대해 평점을 매길 수 없도록 시스템을 바꿨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네이버는 검색 결과창에 네티즌 평점이 아닌 관람객 평점과 전문가 평점이 노출되도록 변경됐다.

  한편 평점 시스템 개편으로 영화 개봉 전 이뤄지는 평점 테러는 방지할 수 있지만, 개봉 후 이어지는 평점 테러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김헌식 문화평론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영화를 보지도 않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스스로의 판단을 통한 영화 선택 및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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