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609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마일 하이 시티’ 불리는 덴버.
해발 1609미터에 위치하고 있어 ‘마일 하이 시티’ 불리는 덴버.

  나는 미국 가수 존 덴버(John Denver)의 열렬한 팬이다. 비록 그는 1997년 10월 비행기 사고로 유명(幽明)을 달리했지만 그가 부른 노래의 맑은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는 고스란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의 노래는 한국을 대표하는 목가(牧歌)시인 신석정 선생님의 시를 읽고 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향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산 속에 묻힌 바위와 하늘의 구름을 존 덴버는 테너보다 훨씬 여린 목소리로 연주했다. 고등학교 시절 등교하면서 지금은 추억의 아이템이 되어버린 워크맨으로 그의 노래를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대학에 진학해서 영어로 그의 노래 가사를 쓰리라고 다짐했었다. 한국인이 한국의 자연을 영어로 찬미(讚美)하는 노래를 미국의 ‘Country singer-song writer’인 존 덴버가 부른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같은 반의 급우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법조인이 되고 일류기업에 입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나는 고작 영어로 노래 가사를 쓰는 것이 대학에 가서 할 일이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참 순진했고, 나쁘게 말하면 야망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덴버는 콜로라도 주의 주도(州都)이다. 도시의 동쪽으로 로키산맥이 드리운 해발 1,609미터 위에 있는 ‘높은 도시’다. 미국의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도시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덴버를 마일 하이 시티(Mile-high City)라는 애칭으로도 부른다. 해수면으로부터 정확히 1마일, 미터로는 1,609미터 위에 있으니까 그럴듯한 별명이 아닐 수 없다. 장엄한 로키산맥의 보호아래에 있어서 일까 덴버는 권위 있는 여행 잡지 ‘트래블 앤 레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10곳’에 그 이름을 올렸다. 뉴멕시코 주 출신의 가수 헨리 존 도이첸도르프 주니어가 이름을 존 덴버로 바꾸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존 덴버는 이름마저 개명하면서 도시 덴버가 있는 콜로라도 주를 찬양하는 가수로 거듭났다. 참 흥미로운 것은 그의 노래가 미국 두 개 주의 주가(州歌)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Take Me Home, Country Road>는 웨스트 버지니아 주의 주가이고, 내가 그의 노래 중 가장 목가적인 노래로 꼽는 <Rocky Mountain High>는 콜로라도 주의 주가이다. 존 덴버는 1972년 콜로라도 주에 머물면서 내 인생의 행로에 큰 영향을 준 이 노래들을 만든 것이다. 도시 ‘덴버’를 이야기 하면서 가수 ‘덴버’를 계속 이야기 하고 있는 나는 대단한 그의 팬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이 높은 도시는 미국에서도 음악적인 영향력이 높기로 유명하다. 작년에 전 세계적으로 복고 음악의 광풍(狂風)을 몰고 왔던 그룹 사운드 ‘Queen’이 북미 대륙의 첫 번째 공연 장소로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초거대도시가 아닌 덴버를 선정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퀸과 더불어 영국의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인 ‘Led Zeppelin’도 역시 덴버에서 첫 번째 북미 콘서트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다. 이번 글에서는 콜로라도의 자연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음악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잠시 심호흡을 하는 나.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철은 온화한 덴버는 퇴직한 미국의 직장인들이 여생을 즐기기 위해 가는 도시로도 그 명성이 높다. 2014년에 이미 마리화나를 합법화 할 정도로 자유로운 도시일 뿐만 아니라, 빼어난 자연환경과 레저시설을 갖춘 ‘건강하게 편한’ 도시라서 그런 것 같다. 미국 대륙을 동서로 나누는 로키산맥에 입지한 로키산 국립공원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1909년 철도 사업가 찰스 엘리엇 파킨스가 기증한 신들의 정원(Garden’s of the Gods), 해발 4,302미터를 자랑하는 파이크스 피크(Pikes Peak)도 덴버에 가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쿠어스 맥주 양조장과 콜로라도 로키스의 구단인 쿠어스 필드는 큰 재미를 주고, 이탈리아의 건축가 지오 폰티와 유대계 미국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덴버 아트 미술관은 덴버의 예술적 위상을 한층 더 올려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1994년 4월 존 덴버는 환경보호 콘서트를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열었다. 나도 그 당시로서는 ‘거금’을 투자하여 관람했다. 살아있는 그를 본 마지막 기회였다. 그에게 전달하지 못한, 사실은 아직도 미완성인, 그를 위한 ‘가사’가 내 앨범의 한 쪽에서 잠자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도 전달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존 덴버의 노래를 오래된 테이프로 들어보는 가을의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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