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F. Kennedy Memorial Plaza’ 안에 있는 케네디 대통령 기념비.
‘John F. Kennedy Memorial Plaza’ 안에 있는 케네디 대통령 기념비.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그의 취임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보십시오. 미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물어 보십시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나는 이 문장을 왕년(往年)에 최고의 영어교재였던 <성문종합영어>에서 처음 봤다. 말에 내재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이 문장에 들어있는 ‘문법’사항에 더 관심이 많았다. 미친 듯이 외웠고 미친 듯이 문제를 풀었다. 그래도 이런 문장을 남긴 사람은 어렴풋이나마 위대해 보였다. 한국의 영어교육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안 건 꽤 나중의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JFK’라는 약어로 더 친숙한 고(故)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통령 중 한 명이다. 그는 달변가였고, 핸섬했고, 미국인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주옥(珠玉)같은 어록을 남긴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44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새로운 미국의 혁신적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젊은 미국의 리더를 오랫동안 존재시키지 않았다. 케네디는 1963년 11월 22일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에게 오픈카를 타고 퍼레이드를 하던 중 암살당했다. 취임한지 3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피지도 못한 채 스러진 것이다. 텍사스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댈러스(Dallas)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으로 모든 미국인들은 경악했고, 미국의 나아갈 방향과 운명도 그의 죽음으로 많이 바뀌었다. 내가 댈러스에 도착한 날에 이상하리만치 겨울인데도 많은 비가 내렸다. 

  서부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미국 여행은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주에 있는 도시들을 거치고, 콜로라도 주의 덴버를 찍은 후, 미국 본토에서 가장 큰 주인 텍사스 주로 이어졌는데, 텍사스에서 가장 큰 도시인 휴스턴도 아니고, 대학 때 은사님이 늘 자랑하시던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이 있는 오스틴도 아닌 댈러스로 방향을 잡았다. 그 이유는 케네디 대통령을 기리는 ‘케네디 메모리얼 광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댈러스 시민들의 성금으로 1970년에 완성된 이 광장 안에는 미국의 건축 거장 필립 존슨이 설계한 기념비가 있다. 소박한 크기의 기념비를 보고 있자니 사전에 미리 모의(謀議)하지 않고서는 미국의 대통령 경호가 이렇게 허술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휩싸였던 기억이 새롭다. <JFK>라는 영화도 만들어졌고,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꽤 많지만 아직도 그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영어 교재에 나왔던 문장이 많은 시간이 지나서까지 나의 여정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니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는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진다. 

  오스왈드가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한 건물은 식스 플로어 뮤지엄(The Sixth Floor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건물 자체는 7층이지만 저격 장소가 6층이라서 이런 이름이 명명되었다고 한다. 웨스트 엔드 역사지구(West End Historic District)와 댈러스 미술관 등 볼 것으로 풍성한 댈러스였지만 도착하고 나서부터 ‘케네디’라는 이름에만 꽂혀있던 나는 태생적으로 멀티태스킹을 하지 못하는 인간인 것 같다.    

  케네디 대통령의 어록 중,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Mankind must put an end to war, or war will put an end to mankind)”라는 말은 현재 한반도 위에 드리운 먹구름을 암시하는 것만 같고, “결코 두려워서 협상하지 맙시다. 그렇다고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맙시다(Let us never negotiate out of fear. But let us never fear to negotiate)”라는 말은 한국의 외교 당국자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처럼 다가온다. 

  이번 주말에 나의 국제통상협상론 수업을 듣는 외국인 학생들과 등산을 가는데,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협상과 관련된 케네디 대통령의 어록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등산에 지친 학생들에게 무거운 주제인 듯해서 내 마음도 조금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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