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밀란 쿤데라, 『불멸』(김병욱 譯) 중

  해변의 작은 마을에 노년의 자매가 살고 있다. 언니(자넷)와 동생(우슐라)은 성격은 다르지만 배려심있게 서로를 위하며 지낸다. 어느 날 난파 사고로 기억을 잃고 떠내려 온 청년을 구조하기 전까지 자매의 삶은 고요하고 안온했으나, 청년을 두고 보일 듯 말 듯 신경전을 벌일 때 평화로운 삶은 잠깐 아슬아슬한 위기에 놓인다. 감정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자매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관계는, 최소한 법적으로는, 한 집에 살면서 생계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난, 노화, 미성숙 등의 사유로 혼자 살아갈 수 없을 때, 사람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사회보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민법은 일단 친족에게 부양의 의무를 지운다. 부모와 자녀 사이, 배우자 사이, 그리고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 사이에서는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민법 제974조), 그리고 이중에서도 부모가 미성년의 자녀에게 가지는 부양의무와 배우자가 서로에게 가지는 부양의무는 다른 경우보다 훨씬 강력하여, 자기의 생활수준을 낮추어서라도 상대방의 생활을 자기와 같은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제1차적 부양의무). 다시 말해 어린 자식과 배우자에게는 자신이 곤궁해질 위험이 있어도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친족 사이에서는 자신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상대방을 부양할 의무가 있다(제2차적 부양의무). 영화 속 여인들은 후자에 해당한다(청년의 양복을 누구 돈으로 지을 것인가로 동생이 잠시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에서, 둘은 각자의 재산을 따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년의 반려가 반드시 배우자와 자식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영화 속 자매와 같은 경우에는 법적 연결고리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 결혼을 해 자식을 키우고 노년에는 장성한 자식의 돌봄을 받는 게 일반적인 시대는 이미 지났는데, 노노(老老)부양의 문제까지도 부모자식 관계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우려스럽다.

  청년을 구조한 날부터 여인들의 낡은 집에는 생기가 돈다. 천진하고 말쑥하고 재능 있는 청년은 한 지붕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잔잔한 인생을 살아 온 여인들을 흔들어 놓는다. 자매는 청년에게 반하고 독점욕이나 질투처럼 사랑에 따라오는 감정들도 조금씩 맛본다. 주체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애정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생이나, 그녀와 같은 애정을 공유하고 있기에 이해와 염려 속에서 동생을 지켜보는 언니나 모두 청년과 함께 있는 시간은 잠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황홀한 시간은 짧게 끝나고 결국 청년은 떠나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따사로운 분위기에서 결말을 맞는다. 이제 멀어진 청년을 바라보는 여인들의 시선이 상실감이나 고통에 젖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선율 속에서 무대에 선 청년을 바라보는 자매의 표정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교차하지만, 분명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비탄과는 거리가 있다.

  이미 인생의 황혼에 든 자매는 점점 더 늙어갈 것이다. 언니는 동생에 비해 이성적이고 상황판단이 빠르지만 신체적 기능은 동생보다 더 노쇠하였음이 드문드문 엿보인다. 아마도 언니는 곧 동생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할 것이고, 어쩌면 둘 다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게 될 지도 모른다.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이 여인들의 일상은 어쩌면 그날로 다가가는 하루하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은 ‘가라앉아 있었던 한 몸짓’을 수면 위로 올렸고, 그 불멸의 시간을 반추하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는 기쁨을 동반할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정말이지, 이 영화 속 주디 덴치(우슐라)보다 더 소녀 같은 표정과 몸짓의 배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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