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김보라 감독
'벌새' 김보라 감독

  세상이라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우리 개개인은 한 마리 벌새와 같다. 한 마리의 작은 벌새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온전히 개인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개인은 집단이 된다. 한 마리의 벌새가 모이고 모여 역사를 만든다. 중학교 2학년 은희(박지후)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정한 집을 찾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녀를 둘러싼 공간인 집과 학교는, 학생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이어야 마땅하지만 그녀에게는 폭력과 무기력을 감내해야 하는 공간이다. 가부장적인 아빠와 딸에게 무관심한 엄마, 성적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을 무시하는 학교. 그렇기에 은희는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함을 느낀다. 모든 것이 위태로운 은희는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고자 늘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런 은희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그녀의 친구와 남자친구, 그리고 후배였다. 하지만 편안함을 주던 관계마저 금이 가기 시작하고, 은희의 세계 속 은희의 공간은 점점 더 사라져 간다. 그럼에도 은희는 그녀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는 한문 선생님이자 멘토인 영지(김새벽) 덕분에 삶의 방향성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그러나 영지 역시 평범한 한 명의 청년이자 삶에 있어 갈등과 고민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영화 <벌새>는 개인의 중반부까지 은희의 시선을 차분히 따라가기에 잔잔한, 한 편의 성장 스토리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점점 곪아가는 은희의 마음이 부풀만큼 부풀었을 때,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발생하며 시대의 아픔과 마주하는 은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형적 경제 발전이 만들어 낸 성수대교의 붕괴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진정한 방향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성수대교 사건을 직접적으로 해석하지는 않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또 다른 상실을 겪으며 은희가 한 차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 <벌새>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작은 벌새의 몸짓, 그 생명력이 주는 가치와 인내에 대해 역설하기에 잔상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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