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쁜 자매가 나란히 앉아 피칠갑의 흰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장화, 홍련』의 포스터와 달리 영화에는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귀가 멍멍하도록 울려대는 비명이나 폭음도 거의 없다. 고적한 집과 평화로운 풍경, 잔잔한 음악 속에서 공포를 자아내는 것은 새엄마(은주)와 자매 중 언니(수미)의 적대감, 그리고 곧 희생될 듯 가련한 동생(수연)의 위태위태한 분위기이다. 

  자매의 아빠와 새엄마, 친엄마의 자세한 사연은 영화 중반이 넘어서야 짧게 드러나지만 그 사연을 알지 못해도 자매와 새엄마의 적대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데렐라, 콩쥐팥쥐 등 아이들과 친숙한 동화에서도 그러하듯 전처의 자녀와 후처는 사이가 좋을 수 없다고 당연히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식입장에서 아버지의 새 아내는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한 낯선 사람이고 후처입장에서 남편의 자녀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음에도 자신이 돌보아야 하는 동시에 자기 친자식과 경쟁관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새엄마와 아빠가 불륜관계에 있었다면 수미가 새엄마를 향해 품는 분노와 경계심은 당연하다.

  그런데 불과 삼십 년 전에는 이런 관계가 법적으로는 친모자관계와 동일했다. 남자가 이혼 후 재혼을 하면 전처는 친권을 상실하고 남편의 호적에서 지워졌다. 반면 후처는 남편의 호적에 입적되고 전처의 자녀는 새엄마와 모자관계가 될 뿐아니라 새엄마의 가족과도 친척이 되었다(민법 제773조;1990년 삭제). 더 놀라운 것은 적모서자관계, 즉 아내가 있는 남자가 혼외자를 낳은 경우, 그 혼외자와 남편의 아내 사이에서도 친자관계가 인정되었다. 반면 여자가 재혼하면서 함께 데리고 간 자녀에게는 가봉자(加捧子)라는 생소한 이름이 붙어 남편과 남편 집안 호주의 동의를 얻어야 호적에 입적될 뿐 새로운 친자관계가 인정되지 않았다. 표준대사전에 의하면 가봉자의 뜻은 ‘여자가 덤받이로 데리고 온 아들’이다. 덤받이. 느낌이 확 오지 않는가. 재혼한 남편은 이 아이에 대해 부모로서 지는 부양의 책임이 없고 상속도 인정되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공포의 진짜 정체는 수미의 죄책감이다.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발생한 결과를 돌이킬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는 수미 때문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공포스럽다기보다는 슬프다. 한편 무덤덤한 방관자처럼 한 발 빼고 있는 수미아빠의 모습은 분노를 자아낸다(공교롭게도 이 영화 이후 수미 아빠(김갑수)는 둘째딸 수연(문근영)과 『신데렐라 언니』라는 드라마에서 계부자관계로 재회한다. 재혼한 아내의 딸과 그의 관계는 『장화, 홍련』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생각해보면 홍길동의 아버지도 그랬다. 처첩을 두기로 결정한 것은 홍판서인데 심적 갈등과 비난은 다른 사람의 몫이다. 무엇보다 최대의 피해자는 어린 자식 홍길동이다. 길동이의 슬픔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유씨부인을 어머니라 불러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러 이유로 이혼이나 재혼을 할 때 그것을 ‘잘못’이라고 단죄하거나 재혼가정의 자녀가 불행할 것이라 예단하는 시각은 편파적이다. 그러나 본인의 행동으로 발생한 결과를 감수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사자이지, 그로 인한 고통을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부계혈통중심의 공고한 가부장제도가 부(父)이자 부(夫)인 남자를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편제하면서, 그 외의 구성원인 아내나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관계를 법률상 강제해 왔다. 호적만 놓고 본다면,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家)에서 나머지 구성원은 마치 교체 가능한 부속처럼 갈아끼워졌던 것이다.  

  다행히도 현재 계모자관계는 남녀 모두에게 있어 각각 아버지(또는 어머니)의 배우자로서, 그리고 남편(또는 아내)의 자식으로서 인척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둘 사이에 친자관계, 즉 어버이와 자식이라는 강력한 결합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입양을 해야 하고 당사자의 의사가 어떠한가는 이 입양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다행스러운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가부장제의 그늘은 아직 짙어서, 분노한 아버지의 대사로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가 여전히 남용되고 있다.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하는 학생이 있다면 호적이란 제도가 없어진 지 10년이 지났음을 당당히 밝히고, 부디 얼른 자리를 피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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