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당선작

육교

육교는 사이드미러가 없고 잘라낼 발톱이 없다
치열하게 쓰러지고 깨어나며
제자리를 반복하는 오뚝이

길게 뻗어 나온 그림자로 빛을 잘라내고서
주저앉고 싶다 두리번거릴 때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육교 한 가운데서

리어카 끄는 행인은 멈춰 서 있다
오를 수도 안 오를 수도 없는
빈 육교와 차도를 번갈아 보면서
무엇을 포기할지 눈꺼풀을 깜빡이는 동안에도

육교는 중립적이다
어느 방향으로도 고개 숙이지 않으며
오는 해와 가는 해를 붙잡지 않는
중재자의 태도를 가졌다

해는 페인트 공을 자처한다
오후의 볕을 둥글게 말아 쥐고
벌어진 시간의 틈새로
붉은 가로등을 그려 넣으면
호루라기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교차로의 차들

방향은 알고 속도는 알 수 없는
하루는 어느 방향으로 갈라지고 있을까

짙어져가는 노을의 색
사람들의 하루는 발자국을 따라 휘어진다
육교는 휘파람을 불 줄 모르고
굴렁쇠처럼 굴러가는 바퀴를 향해
무너지지 않을 등을 내어준다

육교의 단단한 혓바닥 위로
사람들 발자국이 타박타박 쌓이는데
덜 자란 치아 같다

리어카를 끄는 행인과
쳇바퀴를 굴리는 사람들의 기지개

 
시 부문 심사평

  제46회 숭실문화상 시 부문 응모자는 모두 23명이며, 총 88편의 작품이 접수되었다. 이번 응모작들의 대체적 경향은 정체모를 불안과 암울의 정서를 보인다는 것인데, 이는 공정의 기회가 상실된 현실과 메울 수 없는 계층 간의 격차에 따른 소외의 감정으로 보인다. 시가 현실의 문제를 반영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이 시의 모든 것을 압도할 수는 없다. 시는 가야할 곳을 일러주는 꿈의 지도(地圖)이고, 정신의 거처(居處)를 밝혀주는 등불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응모작들이 보인 막연한 불안과 위기의식에 공감과 아쉬움을 함께 느낀다. 그러나 시를 통해 일어서려는 응모자들의 열정과 의지가 분명해보였기에 시의 미래에 대한 두터운 믿음도 가질 수 있었다.

  숙고를 통해, 당선작 최종 후보로 이가인(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1학년)의 「육교」와 서현욱(국어국문학과 2학년)의 「중력, 굴복, 퇴근」을 놓고 고민한 끝에 이가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서현욱의 작품을 가작으로 결정했다. 이가인의 「육교」는 일상을 관찰하고, 그 관찰의 결과를 시적으로 재구성해가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리어카를 끄는 행인’에게서 “오를 수도 안 오를 수도 없는/빈 육교와 차도를 번갈아 보면서/무엇을 포기할지 눈꺼풀을 깜빡이는” 진퇴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통해 “방향은 알고 속도는 알 수 없는” 현대인들의 불안을 탐구해가는 일련의 상상 과정이 탄탄해 이가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관찰의 시선이 길어지면 시적 긴장감이 느슨해진다는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지만 충분히 언어의 응집력을 키워 가리라 여겨진다. 서현욱의 「중력, 굴복, 퇴근」은 ‘중력’이라는 메타포로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일상에 굴복해가는 이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포착해내는 사유가 참신했다. “고민은 들어줄수록 중력에 굴복되고/극복은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또옥 같은 것을 머리에 이고”라든지 “모두의 무게로 땅바닥이 가라앉으면”이라는 일련의 표현이 보여주는 통찰은 서현욱 시의 장점이자, 힘이다. 그러나 행과 행의 다급한 연결, 시 전체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몇몇 표현으로 인해 시가 지녀야할 완결성의 틀이 흔들린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비지엠’과 ‘왕뚜껑’, ‘암컷’과 ‘수컷’이라는 시어가 주제와 호응할 수 있는 적절한 선택이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당선작과 가작 외에 임현우(영어영문학과), 곽준영(회계학과), 이상협(국어국문학과), 김은미(예술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김민(국어국문학과), 신나라(글로벌통상학과)의 작품도 눈여겨보았다. 시에 대한 열정이 진지한 만큼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이 충분히 기대된다. 숭실문화상에 응모한 모든 이에게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엄경희 교수(국어국문학과)
  이찬규 교수(불어불문학과)

 

수상소감

  수상소식을 들은 다음 날, 버스를 타고 한강대교 옆을 지나다가 “살아있으면 언젠가”, “생각보다 괜찮을 거예요” 라는 두 문장을 보았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두 문장이 제 시선을 오래 잡아끌었습니다. 2019년은 제게 여러모로 새롭게 다가왔던 해입니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이의 앞자리수가 바뀌었고, 처음으로 해보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것과 마주하고 정신없는 해를 보내면서 작년보다 글을 덜 쓰게 되기는 했지만, 쓰지 않는 동안에도 시에 대한 마음만큼은 놓을 수 없었습니다. 흔히 나이는 노력 없이도 먹을 수 있다 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했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요.

  저에게 시는 신발과도 같습니다. 다칠까봐 걱정되어 내딛지 못했던 길을 걷게 하는 용기를 주었고,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 및 사물을 만나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이번 수상소식은 단순한 수상을 넘어, 스물이 되기까지 잘 지내왔다는 따뜻한 격려와도 같습니다. 저를 믿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다음 해에 만나게 될 새로운 나를 찾아 꾸준하게 시를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가 마주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가인(문예창작·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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