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순수한 여행가다.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 무라카미 하루키가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듣고 여행을 결심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저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신호를 전달받고 여행 가방을 싼다. 여행을 비즈니스와 엮을 생각이 전혀 없다. 여행은 여행으로서만이 그 역할과 의미를 다한다. 그리고 친족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나 혼자 가든 여럿이서 같이 동행하든 내 마음이 동할 때 여행을 떠난다. 물론 동행할 때는 취향과 가치관이 서로 맞는 사람들하고만 떠난다. 여행의 기간이 하루 이상만 되어도 각기 다른 취향과 가치관으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행이라는 것이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 준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 글도 쓰고 블로그도 운영하다보니 여러 곳에서 ‘강의라는 형식’으로 초청을 받을 때가 꽤 있다. 나의 여행 경험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지지만 청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지를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벌써 작년이 된 2019년 12월 초, 충청남도 공주(公州)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힐링을 위한 여행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를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공주라는 도시에 참으로 오랜만에 왔다. 강의가 없었으면 안 왔을 것이 확실하다. 늘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지만 나는 왜 국내여행을 많이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은 늘 먼 곳에 있는 것을 동경하는 습성이 있다. 특히 나는 더 그렇다. 멀리 어딘가에 ‘일상’이 아닌 ‘신비’가 존재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서일까. 내가 사는 나라는 쉽게 가볼 수 있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나를 밖으로만 돌게 만든 주된 이유일 것이다. 대학교 때 공주가 고향인 친구와 함께 공주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서 나는 ‘여행’을 강의하러 이 도시에 오게 된 것이다. 서울의 변화와는 비교할 수가 없겠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예전의 공주와 현재의 공주를 조금이라도 비교해보려는 나. 끊임없이 때와 때, 장소와 장소를 비교하려는 것은 일종의 직업병을 넘어 나만의 중독 증세다. 

 

마곡사 경내에 있는 대웅보전은 보물 제 801호로 지정되었다.
마곡사 경내에 있는 대웅보전은 보물 제 801호로 지정되었다.

  성황리에 강의를 마치고, 신라시대에 지어진 마곡사(麻谷寺)로 차를 몰았다. 마곡사는 선덕여왕 9년인 640년에 창건(創建)되었으니 진정한 천년고찰이다. 오래된 것은 ‘단순히 오래된 것’과 ‘의미가 있게 오래된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마곡사는 후자에 해당한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가진 고찰이지만 요즈음의 대한민국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이 마곡사에서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은신했었다는 사실이다.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가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시해(弑害)된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있은 후,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있던 일본인을 제거하고 마곡사에 은신했다. 마곡사 경내에는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백범당이 있고 승려가 되기 위해 머리를 삭발했던 바위도 그대로 있다. 천년고찰과 독립운동가라는 말이 알 수 없는 앙상블을 만들어 나의 머리를 감싸는 느낌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공주라는 도시에 더 빨리 왔었어야 했다는 죄책감에도 휩싸였다. 곧 외국으로 기행(紀行)을 떠나는 나의 마음속에 작은 물결을 남기는 도시 공주. 귀국해서 좋은 촬영 장비를 챙겨서 다시 방문할 것을 다짐한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숭실대에서 배우고 익혀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해낼 졸업생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는 더 큰 애착이 간다. 단순히 오래된 숭실대학이 아닌 의미 있게 오래된 숭실대학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던 학생들이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는 순간이다.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염원하며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했던 애국자의 혼이 숭실대학교 졸업생들에게 늘 함께 할 것이다. 

  더 의미있게 발전해 나갈 숭실대학교의 모습을 동문이 된 졸업생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회에서 매일 매일 기쁘게 바라볼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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