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거리에서, 사람들은 차들이 다니는 대로 앞에 서 있다가도 푸른 신호등이 켜지면 횡단보도로 들어서 대로를 건너기 시작한다. 신호등은 푸른색일 때와 붉은색일 때의 의미가 다르다. ‘푸른색’과 ‘건너기’, ‘붉은색’과 ‘멈추기’는 어떻게 맺어지게 되었을까? 기호학자 퍼스(C. S. Peirce)는 이렇게 표시체[signifiant]와 표시대상[signifié]이 ‘자의적(arbitrary)’으로 맺어지는 기호를 상징(symbol)으로 규정한다. 인간의 언어가 다른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와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상징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만일 산등성이 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날 때 그것은 등성이 뒤의 불을 표시하므로, 동물들은 그 신호를 알아채고 본능적으로 도망간다. 연기가 불을 표시하는 것은 자연의 인과적 현상으로서, 기호로는 지표(index)에 해당한다. 그러나 말소리와 의미가 자의적으로 엮인 언어의 운용 능력은 인간만의 특성이기 때문에, 20세기 인류학자들은 인류를 ‘상징의 인간(homo symbolicus)’ 혹은 ‘상징의 동물(animal symbolicum)’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상징체는 앞서 말한 지표와 달리 표시되는 대상과 물리적 연계성이 없다. 그 덕에 상징은 소통의 물리적 한계를 넘게 해준다. 그리하여 인간은 수백, 혹은 수천 년 전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사상이나 지식을 시공간 넘어 전수(傳受)할 수도 있다. 또한 전에 없던 새로운 물건을 설계하거나 제도를 구상해 미래를 창출하기도 한다. 대대로 학습하고 전통을 이루며, 법령과 풍습을 이룬다. 그러한 모든 것을 우리는 문화라고 한다. 문화는 상징의 산물이다.

  이는 상징이 눈앞의 지시 대상을 초월한 ‘개념’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가 이성, 혹은 합리성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예컨대 수(數)는 순수한 개념이다. 그래서 수는 물리적 세계로부터 독립된 세계를 구축한다. ‘1+1=2’를 무엇으로 증명할까? 얼핏 ‘사과 한 개’와 ‘또 다른 한 개’를 합하면 ‘두 개’가 아니냐는 아이 수준의 설명 방식을 떠올릴 수는 있으나 그것은 증명이 아니라 비유이다. 가장 정확한 증명은 ‘2-1=1’이라는 순환적 연산으로, 수학적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크기가 각각 다른 사과와 달리, 절대적 정량은 수로 마련되는 순수한 관념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플라톤은 이데아(idea)를 제시했다. 매 순간 변질될 수밖에 없는 실재적 세계가 아닌, 영원불변의 절대적 세계는 관념으로만 구축되기 때문이다. 관념은 일상적인 용어로 곧 ‘개념’이다. 개념은 원리적으로 접근하는 의미로서, 실제 소통 의미와는 다른 차원이다. ‘나무’라고 했을 때, 실제 대화에서 가리키는 대상은 일정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심상도 그때그때 달라지지만, 개념은 실제의 대상도 아니거니와 흔히 생각하는 심리적 표상도 아니다.
본래 기호를 표시체와 표시대상의 결합으로 설명한 것은 소쉬르(F. de Saussure)인데, 그는 인간의 언어를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의 두 차원으로 구분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둘 다 ‘말’이라는 뜻이지만 랑그는 좀 관념적인 의미로 규정된다. 앞서 말한 개념적 차원의 ‘나무’는 랑그로서의 의미라고 설정할 수 있지만, 실제 사용상 다양하게 구현되는 ‘나무’의 의미는 빠롤로서 실현된다. 랑그와 빠롤은 표시체, 즉 말소리에서도 구분된다. 예컨대 국어의 ‘ㄱ’은 실제로는 무성음[k]으로도 유성음[g]으로도 발화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지 유․무성음 구분만 아니라 국제음성부호로도 일일이 가릴 수 없는 연구개음의 ‘무수한 변이’, 즉 빠롤로써만 실현된다. 그럼에도 절대적 음가로서 ‘ㄱ’이 있다고 설정하는데, 그것이 랑그로서의 음, 즉 ‘음소’이다.

  상징 능력을 어의적 능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인 구문 능력과 더불어 인간 언어능력의 핵심이다. 언어능력이 유전적으로 결정된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이라고 생각한 학자가 촘스키(N. Chomsky)이다. 촘스키는 언어능력이 불연속적이라는 관점을 갖는다. 통상적인 진화의 결과가 아니며, 다른 인지능력과도 질적으로 구분되는 종류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은 침팬지나 보노보노 등의 영장류가 상당한 수준의 어의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한다. 자연 상태에서 그 결과는 같은 종이라도 집단마다 다른 행동 특성, 즉 문화적 현상을 보이는 일로 드러난다. 언어능력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논쟁은 다음 회에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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