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문법과 생성문법의 차이를 국어의 예로 간단히 들어보자. 예컨대, ‘잡고’, ‘잡아라’의 ‘잡-’은 ‘ㅂ’이 언제나 온전하게 소리가 나지만, ‘굽고’, ‘구워라’에서 ‘굽-’은 ‘ㅂ’으로도, ‘우’로도 소리가 난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는 ‘굽-’이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기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생성문법에서는, ‘굽-’의 ‘ㅂ’을 /ß/라는 기저음으로 설정한 다음 이것이 뒤에 자음을 만나면 자음성이 강화된 ‘ㅂ’으로 도출되고, 모음을 만나면 모음인 ‘우’로 도출된다는 일종의 동화규칙으로 설명한다. 결국 ‘ㅂ 불규칙’은 규칙변화인 셈이다. 이는 실제로 관찰되지 않는 소리를, 연역적 방법을 통해 추상적인 기저음을 설정함으로써 가능한 설명이다. 실제로 현대 국어에서 불규칙을 겪는 ‘ㅂ’은 실제 중세국어 자료에 ‘ㅸ’[순경음]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공시적 현상을 바탕으로 한 가정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20세기 전반에 시작된 구조주의는 문학, 인류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학술 영역에 적용되었다. 이를 계기로 언어학은 중심적인 학문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구조주의는, 소쉬르가 1913년에 사망한 후, 소쉬르(F. de Saussure)의 제네바 강의를 수강했던 제자들이 그의 강의를 옮겨 적어 서적으로 낸 유명한 책 <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의 구조주의는 그 명칭이 암시하듯이 개별적 현상들을 총체적인 체계(system) 속에서 파악하려는 학술적 성향이나 방법론을 일컫는다.

  지난 호에 소개한 ‘랑그(Langue)’의 개념처럼, 소쉬르는 충분히 관념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다. 관념성은 개념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의 단면이다. 이러한 소쉬르의 구조주의가 미국에 이전되어 행동주의의 모습을 띠면서 촘스키(N. Chomsky)에게 비판받는 양상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행동주의는 관찰 가능한 객관적인 현상만을 과학적 대상으로 추구하는 성향을 말하는데, 냉소가 섞여 있는 명명이다. 초기 인지과학은 행동주의 심리학과 그것을 비판하면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유명한 파블로프(I. Pavlov)의 개나 스키너(F. Skinner)의 비둘기 실험이 잘 알려진 행동주의 연구이다.

  촘스키는 스키너를 비판하고 외현적 세계 이면의 정신적 체계를 추구하며, 연역적인 방법이 그것을 밝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언어에 대한 촘스키의 관점은 일반 인지능력과는 구분되는 특수한 정신능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생각은 근대의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와 닮아있다. 데카르트(R. Descartes)는 아무리 지능이 낮아도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고 함으로써, 언어능력을 인류학적 특성으로 암시하고 있었다.

  어린이가 어떤 방식으로 모국어를 습득하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도, 단지 높은 지능때문이 아니라 별도로 마련된 선천적 언어습득장치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성인 언어를 단순히 모방하는 차원이 아니라, 타고난 내면의 능력에 의해 규칙화함으로써 스스로 다양한 문장을 생성해낸다고 한다. 이 시기의 피아제(J. Piaget)가 이끌었던 발달심리학도, 경험보다는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일정에 따라 아동의 인지발달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언어능력이 선천적이며 다른 인지능력과 구분된다는 관점은 더욱 힘을 받고 있었다. 인간의 거의 모든 성격 및 행동 특성을 유전자에 기인한 것으로 설명하던 유전학도 기여를 한다. 

  이러한 불연속적 관점에 대한 뇌과학의 지지는, 이미 19세기 후반에 폴 브로카(Paul P. Broca) 박사가 실어증을 기반으로 뇌의 언어영역을 밝혀냄으로써 예고되었다. 그 후 뇌의 구역이 기능별로 분할되어 있는, 즉 단원화(modularization)되어 있는 모습은 촘스키의 관점을 더 설득력 있게 했다. 오늘날에도 뇌의 영역별 기능을 지도처럼 그려내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뇌과학이 언어학과 가지는 특수한 관계는 이미 초기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래의 언어신경학적 연구의 결과들은 단원화된 뇌의 영역과 인지-행동 기능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려는 생각에 제동을 건다. 언어의 예를 들어 이해를 돕자면,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되면 각각에 해당하는 구문 및 어휘 실어증이 유발되지만, 역으로 브로카 영역이나 베르니케 영역만으로 해당 문법기능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구역은 특정 기능에 대해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정신적, 신체적 기능은 다중적인 뇌영역의 섭동(perturbation)을 필요로 한다. 연속성이나 불연속성, 혹은 모듈화에 대한 논쟁의 양상이 바뀌는 국면이다. 다음 호에서는 언어과정(language process)에 대한 언어 신경 체계의 특성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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