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개화기 감성'의 명과 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개화기 감성'의 명과 암
  • 정예슬 기자
  • 승인 2020.04.13 01:19
  • 호수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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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tvN에서 방영한 개화기 조선 시대를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포스터
지난 2018년 tvN에서 방영한 개화기 조선 시대를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포스터

  급부상하는 '개화기 감성'
 

  최근 △암살 △아가씨 △미스터 션샤인 등 1900년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며, 일명 ‘개화기 감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개화기 감성은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소품과 인테리어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개화기 콘셉트의 축제를 즐기는 등의 행위다. 개화기 감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행보는 의상 대여점이 위치한 관광지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 게시물을 통해 주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사진 및 동영상 공유를 위한 SNS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에서는 사진과 해시태그를 이용한 게시물이 상당수 게시되고 있다. 해시태그는 단어나 여백 없는 구절 앞에 해시 기호 #를 붙이는 형태의 표시 방법이며, 지난 9일(목) 기준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이용해 ‘개화기의상’과 ‘개화기컨셉’을 태그한 게시물은 각각 2만 8천 건, 1만 8천 건에 달했다.

  ‘뉴트로’, 그 안에서 감성을 찾다

  이는 ‘뉴트로’라는 새로운 트렌드와 관련이 있다. 뉴트로(New-tro)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과거에 유행했던 디자인이나 문화를 새롭게 해석해 받아들이는 문화 현상이다.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그 시대의 물건과 소품으로 인테리어를 한 카페나 음식점이 인기를 누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뉴트로의 주요 고객층은 옛것에서 참신한 매력을 느끼고 마음의 만족도를 추구하려는 ‘밀레니얼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이들은 고급스러움을 향유하고 독특한 문화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성신여대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이향은 교수는 “개화기 의상이 지금의 뉴트로 트렌드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밝혔다. 또한,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독특한 문화를 찾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과거의 것이 더 새롭고 특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뉴트로는 주로 밀레니얼 세대에게 재밌고 신선한 문화로 인식되는데 뉴트로의 소비층은 이들에서부터 하여금 중·장년층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개화기 의상 대여점 ‘합천의복’ 관계자는 “개화기 컨셉을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친구, 지인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시부모 등 중·장년 세대와 함께 재방문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수요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뉴트로 감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증가함에 따라 뉴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개화기 콘셉트를 겨냥한 마케팅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 인사동 △전주 한옥마을 △인천 차이나타운 등 관광지에는 당시 유행했을 법한 개화기 의상 대여점이 생겨났으며, 치킨 창업 프랜차이즈 ‘봉구통닭’은 개화기 콘셉트의 인테리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패션, 식품업계에 이어 호텔 업계로까지 나아간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호텔 ‘이비스 앰배서더 인사동’은 지난 2018년 개화기 의상 대여점 ‘경성의복’과 함께 투숙객을 대상으로 의상 대여 서비스를 진행하는 개화기 컨셉의 패키지를 판매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미화 비판 제기되기도

테마파크 롯데월드가 지난 2019년 3월 ‘개화기’를 주제로 축제를 진행했다.
테마파크 롯데월드가 지난 2019년 3월 ‘개화기’를 주제로 축제를 진행했다.

  그러나 뉴트로 트렌드의 대표적인 화두로 떠오르는 개화기 콘셉트는 일제강점기를 미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개화기 콘셉트에서 다루는 것들이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이용했던 △옷 △소품 △테마라는 점과 당시 신문물을 들이고 근대 사회로 나아가며 개선된 일부 기득권층의 모습만 부각해 다루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테마파크 롯데월드는 지난 2019년 3월부터 107일간 ‘개화기’를 주제로 한 축제와 함께 SNS 이벤트로 ‘봄 축제 해시태그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는 각종 개화기 상점으로 재현한 이색 포토존에서 개화기 축제를 즐기는 사진을 SNS에 게재하면 추첨을 통해 커피 기프티콘을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그러나 롯데월드는 소비자들로부터 해당 이벤트가 일제강점기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이벤트를 조기 종료한 바있다.

  일각에서는 개화기 콘셉트에서 ‘경성’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사용되는 것 자체가 일제강점기를 미화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개화기의 시작과 끝에 대한 논의는 학자마다 다르나, 일반적으로 개화기는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1876년부터 최대 1910년 경술국치까지의 시대로 정의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을 칭한다. 따라서 개화기는 일제강점기와 다른 시기이기 때문에 개화기 콘셉트 자체가 일제강점기를 미화한다는 의견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개화기 콘셉트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개화기와 경성시대를 통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개화기 콘셉트로 마케팅을 하는 업체들은 △경성 △개화기 △경성시대 등의 단어를 혼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화기 의복 대여점 ‘경성의복’은 상호명으로 경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개화기와 경성시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지하지 못한 채 SNS상에서 두 단어를 통칭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경성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그 당시 우리나라 수도의 칭호였던 한성을 조선총독부 칙령에 의해 강제로 사용하게끔 한 칭호다. 따라서 콘셉트 생산 및 소비 과정에서 개화기를 경성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일제강점기와 동일한 시기가 아닌 개화기를 사실상 일제강점기 시기와 동일시하는 것과 상응한다. 이에 동국대 사학과에 재학 중인 김용민 씨는 “경성이라는 단어 자체는 한 나라의 임금이 거하는 수도라는 의미로 쓰였지만 경성시대에서의 경성은 다르다”고 밝혔다. 이어 김 씨는 “따라서 두 용어를 혼용해 사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며, "개화기를 경성시대로 인식하며 일제강점기를 화려한 근대 문화가 꽃핀 황금기라고 이해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모던걸’, ‘모던보이’가 이끈 근대 의복 문화
  동시대의 화려함만 부각했다는 비판 여전해


  한편 개화기 콘셉트를 하나의 근대 의복 문화로 보는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개화기 콘셉트를 사실상 강제적 문호 개방의 암울한 잔재로만 기억하는 대신 신문물이 들어 오는 근대화 시기로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업주의와 소비문화가 확산되며, 당시 ‘모던걸’, ‘모던보이’라 불리는 예술가들은 쇼핑을 위해 백화점을 가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등 유행 선도자의 역할을 했다.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간호섭 교수는 “개화기는 우리 민족 사상 처음으로 의복의 형태가 파격적으로 바뀐 때”라고 말했다. 이어 간 교수는 “당시 서양 음악, 무용 등 문화도 함께 유입되며 주로 예술가들이 양복을 입고 패셔니스타(fashionista) 역할을 했다”며, “그들은 모던보이, 신여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역시 당시의 일부 화려함만 부각해 표현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가령 고급 원단의 드레스, 각종 장식이 달린 레이스 장갑과 양산, 화려한 샹들리에 등의 의상 및 인테리어는 부유층의 전유물로, 당시 보편적인 서민들의 시대상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 다음 웹툰 ‘경성야상곡’은 부유한 남촌에 사는 친일파의 딸과 그렇지 못한 북촌에 사는 노비 출신의 딸을 대비해 같은 경성 아래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두 여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를 통해서도 화려한 복장을 하고 여가 생활을 하는 주체는 대부분 돈이 많은 일부 계층에 국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대구향토역사관 변성호 학예연구사는 “지금 유행하고 있는 복고풍 콘셉트는 당시 평균적인 조선사람의 생활 모습과 동떨어져 있다”고 혔밝다. 또한, 서울대 국사학과에 재학 중인 신귀혜 씨는 “개화기 컨셉은 경성의 반짝이는 요소에만 집중한 것 같다”며 “이것은 식민지 시기 이미지를 전유한다고 하기 이전에 지배계급 중심의 역사와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는 것과 같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신 씨는 “세련된 역사에만 집중하는 문제는 목포 근대도시 복원 사업에서 당시에도 소외됐던 지역을 복원하지 않고, 부유했던 지역만을 위주로 복원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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