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태생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 더 떠들고 싶고, 나가지 말라고 하면 더 나가고 싶어진다. 나도 그런 속성을 고스란히 몸에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많은 모임이 연기되거나 취소돼 일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오게 되는데, 평소라면 쉬기 바쁘던 내가 요즈음은 누구를 불러서 ‘술 한 잔’ 먹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누군가와 마시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나도 ‘청개구리’과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밖으로 나갈 때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실내로 들어갈 때 무조건 써야 하는 마스크의 답답함도 한몫 제대로 거든다. 마스크 착용 시 습기로 인한 안경 김서림 때문에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왕관 모양을 한 ‘못된’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창궐(猖獗)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고(勸告)사항을 넘어 누구나 꼭 지켜야 할 의무처럼 여겨지지만, ‘권고사항’이라는 말이 풍기는 무언의 압박감은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자발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은 큰 스트레스를 만들어 낸다. 지난 2월 중순 이후부터 예정되었던 여러 가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지인으로부터 빈소에 문상(問喪)을 정중히 사양한다는 메시지까지 받았다. 이제 각종 모임이나 경조사도 화상회의 방식으로 하든가 ‘온라인’으로 해야 할 판이다.

  선생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오죽이나 답답할까. 초중고를 포함해 대학교까지 기존 교육체계의 붕괴를 암시하는 서막이 열린 것 같아서 슬프기까지 하다. 그런데 상당히 현실화된 슬픔이라는 것이 문제다. 단순히 온라인 교육으로 따지자면 이미 기존의 학교 교육보다 양질(良質)의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실제적인 공간이 주는 ‘정통성(Authenticity)’가 희미해지면 학생이라는 이름의 소비자들은 더 이상 학교라는 공간에 오지 않을 것이고 올 필요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 학교가 아니라 가장 좋은 콘텐츠를 올리는 곳에 훨씬 값싼 가격으로 링크하면 된다. 약간은 ‘오버하는’ 상상만으로도 무서움이 몰려온다. 모든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가 지금 휴교를 했거나 온라인 수업 중인데, 계절마다 훨씬 더 강력해진 ‘Strengthened Corona’가 나타난다면 학교는 환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이 될 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의 도시여행을 멈추게 했다. 지난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모 방송국의 ‘반(半)여행 반(半)다큐’ 프로그램을 촬영하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귀국해서는 경주에 있는 골굴사도 가고, 완도군 소속의 보길도에도 여행하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이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나마 막간의 시간을 내어 당일치기로 구례 산수유마을과 광양의 매화마을에 다녀온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글감이 고갈되어가는 기미가 보이면 깔끔하게 마무리하려고 생각했지만 9년간 써왔던 여행칼럼 ‘이都저都’의 끝이 많이 앞당겨질 듯하다. 유럽은 앞으로 최소 1년간은 못갈 것 같아 보이고, 중남미와 오세아니아도 입국 통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더군다나 이미 촉발된 아시아인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여행의 즐거움을 크게 반감시킬 것이고, 이런 편견은 여행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면으로 보나 나의 여행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의 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딱 한 가지는 집에 오래 머물다보니 그동안 등한시했던 서재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여준 것이다. 20년 전에 읽었던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총,균,쇠> 다시 펼쳐보게 해주었고, 석학(碩學)의 탁견에 감동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세균이라는 사악한 선물이 인류 역사 변화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정확히 딱 맞아 떨어지는 것에 탄복할 뿐이다. 1981년 중국 우한이라는 도시를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했던 딘 쿤츠(Dean Koontz)의 어둠의 눈(The Eye of Darkness)을 주문했음은 물론이다. 배송이 완료되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버릴 것 같다. 물론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이都저都’ 도시이야기를 써오면서 도시와 관련되지 않은 넋두리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의 졸고(拙稿)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그동안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많은 선생님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숭실대학교만의 ‘온라인 수업 시스템’을 설계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정한 방법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효율적으로 조율된 오프라인 수업과 병행 가능한’, ‘학부와 과(科)의 특성을 반영한’, ‘교수자와 학습자의 니즈가 Win-Win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고안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나의 도시여행을 멈추게 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속히 종식되어서 코로나 바이러스 유감(有感)이 유감(遺憾)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투표를 기다리는 봄이 아닌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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