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인공 재훈(이병헌)은 아들의 영어공부를 위해 가족을 호주로 보내고 혼자 산다. 그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부실채권을 대량으로 팔고 나서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고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분노에 찬 채권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주인공에게 욕설이나 폭력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지점장님을 믿었으니 한 번만 도와달라고 애걸하는 가난 한 채권자와 돌봐줄 이 없어 거기까지 따라온 어린아이의 눈빛이다. 잠 못 이루고 힘들어하던 주인공은 결국 아내와 아들이 있는 호주로 떠난다.

  길에서 만난 워킹 홀리데이 여학생(안소희)이 초면에 말하듯 그는 ‘기러기 아빠’이다. 기러기 아빠란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위해 본거지에 남고 나머지 가족 구성원은 자녀교육을 위해 환경이 좋은 지역 혹은 해외로 이동하는 가족 형태의 아버지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부부의 모습은 경제적 협력, 자녀의 출산과 양육 등을 위하여 한 지붕 아래 함께 생활하며 가정을 꾸리는 공동거주의 형태이나, 우리나라에서 배우자가 있지만 혼자 지내고 있는 가구의 비중은 전체 1인 가구의 10%를 넘는다.

  부부는 항상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일까? 민법 제826조 제1항 본문은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동거의 의무는 일반적으로 같은 거소에서 혼인생활공동체를 형성하여 생활할 의무로 정의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부부가 한 집에 늘 함께 살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리하여 제826조 제1항 단서는 “정당한 이유로 일시적으로 동거하지 아니하는 경우 서로 인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부부 일방의 직업상 이유, 자녀 교육상 이유, 입원치료, 요양 등의 필요나 수형(受刑), 군복무 등을 위한 일시적 별거의 경우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 아내는 남편의 결정에 따라 순순히 호주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이와 달리 부부의 협의 없이 한쪽의 일방적 의사로 별거하게 된 경우라면 동거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인데, 다른 의무불이행의 경우와 달리 이때는 강제이행을 청구할 수 없다. 동거의무의 강제이행은 채무자의 인격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되며, 또한 윤리적 의무는 자율적으로 이행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으므로 법적제재에 의하여 타율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만 부부 일방이 정당한 이유없이 별거하고 있다면 상대방에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없고, 별거가 상대방에 대한 악의의 유기에 해당 한다면 재판상 이혼사유(민법 제840조)가 될 수 있다.

  판례는 민법 제826조의 동거‧부양‧협조의무는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일생에 걸친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혼인의 본질이 요청하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청에 부응하지 않을 때는 혼인의 본질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것일까? 영화 속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러기가족으로 살기로 결정한 것은 주인공이고 별거의 목적이나 장소도 그가 주도적으로 정했지만 회사일이 어려워지자 주인공은 텅 빈 집이 견디기 어려워진다. 호주에서 보는 아내는 낯설기만 하다. 아내와 이웃 남자, 그 집 딸과 자신의 아들이 한 가족처럼 어울리는 모습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방인으로 밖에서 떠돈다. 회사에서는 우수한 사원으로서 집에서는 능력 있는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쓸쓸함만 남을 뿐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는 늘 의무에 충실하고자 했는데. 가장 좋은 것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왔을 뿐인데 그가 뒤늦게 깨달은 것은 ‘너무 좋은 거래에는 항상 거짓이 있다’는 것이다.

  길에서 만나 각자의 미련 때문에 동행하던 두 사람은 헤어져 자신의 길로 간다. 태즈메이니아의 해변을 바라보며 선 주인공의 마지막 표정은 홀가분해 보인다. 그러나 그곳은 아들이 예전에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준 장소이다. 동행하던 여자가 그와 헤어지며 남은 것도 엄마가 데리러 올 것을 기다려서이다. 혼자 왔듯이 혼자 떠나면 되지 않겠냐고 주인공은 말하지만 관객인 나는 남겨진 사람들이 맞닥뜨릴 슬픔과 후회에 더 이입하게 된다. 가족은 무엇이며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람으로, 식구로 살아가는 것이 어찌 이리 고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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