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와 일본인 활동가 츠보카와씨.
이용수 할머니와 일본인 활동가 츠보카와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5월 7일 기자회견은 한국 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다. 회견의 핵심은 정의기억연대(옛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이하 정대협으로 함)와 이 단체의 대표로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윤미향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자를 향했다. 할머니는 정의기억연대가 기부금 및 성금 등을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 대표인 윤미향 씨는 이런 문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주장했다.

  할머니는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면사 공장에 다니던 16세에 타이완에 끌려가 성노예 생활을 하다가 1946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여성 국제전범 법정에 나가 피해 경험을 증언했고,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는데 기여했다. 이렇듯 활발히 활동한 할머니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소재가 됐으며 일본에게는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할머니의 기자 회견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 언론과 단체들이 일어났다. 보수 언론은 몇 꼭지씩 특집 기사로 신문을 도배하고, 일부 보수단체는 “왜곡된 역사의식과 지나친 반일 감정을 조장했다”고 주장하면서 윤 당선인을 기부금, 후원금 횡령과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수요 집회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총리의 방한 항의를 계기로 시작됐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피해자였음을 증언했다. 이후 정대협을 중심으로 수요 집회는 이후 28년간 진행돼 현재 1,438회에 이르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는 한국과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여성의 인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지금도 전쟁과 약탈 속에 피해 여성들의 인권이 위협을 받고 있고, 여성만이 아닌 다수 민간인들의 피해도 지속되고 있다.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자 각 나라의 의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각 지에 기림비가 세워졌다. 

  결국 일본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 진상 조사를 실시하고 1993년 8월 미야자와 내각의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은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는 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을 받았으며, 일본군과 정부가 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음을 밝혔다. 이 담화는 이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이어졌고, 일본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이러한 사실이 자세히 서술되어 가르쳐졌다. 

  한국에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는 일본의 침략 전쟁 대상 지역이었던 아시아 각 지역에서 피해자들이 잇따라 증언에 합류하며 여성 인권 유린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과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보상을 요구했다. 미국 하원은 2007년 일본 정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교육을 강조했다.

  정대협은 수요집회를 주관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군내외적 정치와 복잡하게 연결된 가운데, 정대협을 비롯한 단체는 그럼에도 우직하게 피해자를 지원하고, 국제 연대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기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정대협이 기부금 등을 취급하면서 회계 처리가 미숙하였던 점은 지적되었다. 보수 우파들은 할머니들을 위함이 아닌 다른 곳에 썼다고 비판하면서 그것을 윤 당선인을 포함한 단체가 횡령한 것과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나아가 차제에 <반일 민족주의>를 쓴 이영훈 등이나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등이 주장을 정당화시키려 했다.

  정대협의 행정 처리 미숙은 비판받을 일이지만, 그들의 활동 자체는 폄훼할 수 없다. 기부금이 할머니들의 손에 들어가야만 정당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할머니들에게는 정부의 지원금이 매달 지급되고 있다. 할머니들이 겪었던 고통이 다시는 세상에 없게 하는 것이 이들 단체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황금주 할머니, 김복동 할머니 등 많은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생계비와 지원금을 절약하여 장학금과 일본의 조선학교 지원금 등으로 내놓은 사실을 알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현재 열아홉 분이 생존해 계신다. 그렇다면 그 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이 운동은 끝나야 하는가? 그러면 일본의 침략 전쟁과 전쟁 책임도 없어지는가? 다시는 이러한 전쟁 중 여성의 피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가? 그런 일을 사전에 막기 위해 이러한 운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나는 20여 년 넘게 수업 실천과 일본 교류 등을 통해 할머니들과 교류해왔기에 이 운동의 여러 내면도 알고 있다. 정의기억연대와 윤 당선인에게 일말의 아쉬움은 있지만 그들의 활동을 100% 지지한다. 이런 연민이 아마 이용수 할머니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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