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중구, 용산구가 고궁(古宮)과 박물관을 자랑하며 최고를 뽐낼 때, 다른 구들도 볼 것을 강조하며 자웅(雌雄)을 겨룰 태세로 말을 시작했다.  

  강남 3구 연합: 서울의 현대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서울하면 강남이죠. 빨리 한강에 있는 수많은 다리를 건너서 강남으로 넘어 오시죠. 강남은 ‘강남스타일’을 통해서 보듯 이미 세계인이 사랑하는 고유명사입니다. 기라성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강남에 몰려 있습니다. 그건 트렌드 변화의 중심이자 편리한 인프라가 구축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1988년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서울 올림픽의 성화가 켜졌을 때부터 세계인들은 강남을 주목했습니다. 강남은 한국 프로스포츠의 메카이기도 합니다. 또한 크기가 여의도 면적의 절반에 이르는 올림픽 공원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만큼의 가치가 있기도 합니다.

  강남에도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봉은사입니다. 봉은사(奉恩寺)는 신라 원성왕 10년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봉은사는 수도산의 입구에 지어진 대찰(大刹)이었습니다. 높이가 23미터나 되는 미륵대불을 보러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특히 대웅전의 편액(扁額)은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리고 지금은 그저 지하철역 이름으로 통칭되는 ‘선릉’이지만, 선릉(宣陵)은 조선의 제 9대왕이셨던 성종대왕의 무덤입니다. 선릉은 성북구에 있는 정릉과 더불어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마포구: ‘마포’라는 말만 들어도 돼지껍질 소금구이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시나요. 1968년 발표된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에 나오는 노랫말은 서민들의 애환을 말해줍니다. 마포구는 서민의 고장에서 ‘강북’의 ‘마용성’ 벨트를 이루는 지역으로 변화했습니다. 마포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운행됐던 ‘서울전차’의 종점이었습니다. 괜히 <마포종점>이라는 노래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청량리에서 시작한 전차는 세종로와 서대문을 거쳐 마포에서 끝났습니다. 한강으로 가로 막혀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죠. 마포는 예로부터 한강의 대표적인 나루터였습니다. 다른 지방에서 올라온 농수산물은 마포로 집결하여 서울 전역으로 팔려나갔습니다. 마포가 조선시대 제일가는 물류의 중심지였을 때까지는 서울에서 가장 부유했던 곳 중 한 곳이었습니다. 마포는 역동적인 서민들의 삶이 진하게 묻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현재의 마포구는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모든 부문에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서강대학교가 노고산 기슭에 있으며, 국내 최고의 미술대학을 보유하고 있는 홍익대학교도 있습니다. 더 의미가 있는 곳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입니다. 양화진(楊花津)은 ‘버드나무 꽃 나루’라는 뜻의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밀려드는 서구세력을 막아야만 했던, 그래서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입니다. 이 곳에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에 기독교를 전파하려고 했던 선교사들의 묘지를 만든 것입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묘원에 들어서는 순간 구한말의 역사가 멀리서 못 다한 이야기를 해주는듯 합니다.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도 있지요. 2002년의 함성은 스포츠를 넘어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변화의 DNA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쓰레기 매립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월드컵 공원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성공사례랍니다.

  서대문구: 이웃이자 ‘절친’인 마포구에서 학교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구에는 워낙 학교가 많아서 생략하겠습니다. 그러나 아까 봉은사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사찰에 대해서는 몇 마디만 언급하겠습니다. 안산(鞍山)에 있는 봉원사(奉元寺)는 진성여왕 3년인 889년에 승려 도선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봉은사와 봉원사를 헷갈려 하시는데 완전히 그 성격이 다릅니다. 봉은사가 조계종 소속이라면 봉원사는 한국불교 태고종(太古宗)의 본산입니다. 불교의 종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두 사찰의 차이점만 알고 가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서대문구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곳은 서대문 형무소입니다. 1998년 이후부터는 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해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감금되어 고문까지 받았던 곳입니다. 일제 만행의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에서 국권의 의미와 되새겨보시기 바랍니다. 서울에 볼 게 없다고 말하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수난의 역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벼웠던 당신의 생각이 숭고함으로 꽉 채워질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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