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미라, 무신(미라 남동생의 아내), 채현(무신의 전남편의 전처의 딸)으로 이루어진 미라의 가족과, 선경, 경석(선경엄마가 내연남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으로 이루어진 선경의 가족이다. 여기저기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찾아보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이 사랑으로 얽혀서 가족이 되었다고 많이들 강조하는데, 영화 속 가족 구성이 독특해서 그렇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들이 가족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가족 구성원들 중에 민법상 가족이 아닌 사람은 채현뿐이다. 

  민법상 가족은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민법 제779조 제1항 1호), 그리고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제1항 2호)이다. 직계혈족이란 혈연이 친자관계, 조손관계 등에 의해 수직으로 연결되는 혈족으로서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과 직계비속(자녀, 손자녀 등)으로 나누어진다. 형제자매는 방계혈족에 해당하는데, 방계혈족이란 공동시조에서 갈라져 나간 혈족으로서 조카, 삼촌, 사촌도 여기에 해당한다. 혈족의 배우자나, 배우자의 혈족은 원래 인척에 속하는 바, 인척관계는 혼인에 의해 발생하며 이혼 시에 소멸한다. 

  민법 제779조를 토대로 미라의 가족을 살펴보면, 무신과 미라도 생계를 함께 하는 동안은 가족이다(배우자의 형제자매). 무신과 채현은 무신이 전남편과 이혼하기 전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친딸이 아니라도 가족이었으나(배우자의 직계혈족) 그 혼인관계가 이혼으로 종료되었다면 현재는 한 지붕 아래 살아도 가족이 아니다. 반면 형철은 만원 가지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여전히 미라의 형제로서, 무신의 남편으로서 법적인 가족이다. 

  다음으로 선경의 가족을 보면, 선경은 가출한 지 오래 되었으나 엄마하고는 여전히 가족이다(직계혈족). 선경의 남동생은 아버지가 다르지만 어머니가 같은 이성동복형제인데, 예전에는 친족의 범위, 상속의 순위나 상속분에 관해서 부계와 모계의 차별이 있었지만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이러한 차별이 없어지자 대법원은 이성동복(異姓同腹) 형제도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로 인정하였다(대법원 1997.11.28.선고, 96다5421 판결). 지금은 성(姓)이 달라도 형제자매라는 것에 의문이 없으므로 경석은 어린 시절 다른 집에 살 때도 선경의 가족이었다.

  민법상 부부관계나 친자관계로부터는 일정한 권리의무관계가 발생한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권리의무관계가 발생하는지 정해 놓은 것이 없다(부양, 상속 등의 법률관계는 가족이 아니라 친족 개념에 근거하여 규정되어 있다). 원래 제정민법(1960년) 제779조에서 정의한 가족은 ‘호적상 동일한 家에 속하는 戶主와 家屬’을 의미하는 관념적 가족으로서 현실의 가족과는 무관한 개념이었고, 호주제 폐지로 이 개념을 대신해 빈자리를 채운 것이 현행 제779조의 ‘가족’인 것에 불과하기에 민법상 가족의 개념은 아직 공허하다.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살아서인지, 미라와 선경은 세상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박한 계획을 세워 억척스레 살아간다. 자유로운 영혼의 다른 가족이 이들에게 짐을 지우면 그 무책임함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매몰차게 굴지만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결국 가족의 끈을 놓지 못한다. 카메라 셔터 너머에서 딸을 응시하는 엄마의 마지막 눈빛, 채현을 업고 나가는 무신을 담 너머로 바라보는 미라의 시선. 이 두 장면을 보면 선경과 미라가 결국 오랜 계획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남들 못잖은 현실감각을 지니고 있음에도 눈앞의 안쓰러운 것에 대한 연민으로 주저앉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헐어서 가족을 가족으로 만들어낸다. 

  긴 시간을 훌쩍 지나 한 지붕에서 나오는 미라의 가족들은 제법 닯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얌전한 처녀였던 미라는 무신에 버금가는 입담을 자랑한다. 다 자란 남동생과 밥을 먹는 선경은 그토록 진저리 나 하던 엄마를 변호하고 있다. 함께 밥을 해 먹고, 모진 말로 상처주고는 돌아서서 가엾어하고, 밤이 되어 안 오면 기다리고 하다가 서로 닮아가는 것. 이것이 법이 설명하지 않은 가족의 실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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