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못 볼 지도(地圖), 스리랑카, 라오스
지금 아니면 못 볼 지도(地圖), 스리랑카, 라오스
  • 정희섭 교수 (글로벌통상학과)
  • 승인 2020.06.01 15:47
  • 호수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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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반가운 미소를 보내주었던 루앙남타 라후족 어린이들.
나에게 반가운 미소를 보내주었던 루앙남타 라후족 어린이들.

  대망의 2020년이 열리자마자 여행의 운(運)이 내 몸에 내려온 듯했다. 여행의 ‘내공’이 무르익어 올해를 기점으로 빛을 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 1월 28일에 출국하여 2월 23일에 귀국하기까지 무려 26박 27일 동안 스리랑카와 라오스로 EBS<세계테마기행> 촬영을 떠났다. 평소에 즐겨보던 TV프로그램에 내가 큐레이터로서 출연하여 ‘특별한 여행’의 여정을 설명하게 된 것이다. 긴 촬영을 하면서 왜 이 프로그램의 이름에 여행이 아닌 ‘기행(紀行)’이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행이란 여행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이 아니던가. 카메라가 펜을 대신하여 ‘피사체로서의 나’를 영상으로 기록했으니 기행이 정확히 맞는 말이다. 스리랑카와 라오스는 이미 혼자서 여행을 한 바 있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 필요한 곳에는 그 필요함을 충족시켜주는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첫 번째 여정이 시작된 스리랑카의 산동네에도 구세주와 같은 사람이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지’라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빵을 만들어 이 마을 저 마을로 팔러 다니는 ‘춘빵차’의 운전사. 춘빵(Chun Pan)이란 싱할리 말로 ‘재미있는 빵’이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칸트의 지팡이 소리를 듣고 시간을 맞췄던 사람들처럼, 저 멀리서 들려오는 춘빵차의 음악 소리를 듣고 정확하게 ‘때’ 맞추어 빵을 사러 나오는 스리랑카 고지대 사람들. 처음엔 그저 수요자와 공급자의 일상적인 만남으로 보였던 이 광경이 촬영이 계속되면서 덕담(德談)을 주고받고 삶의 애환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감동의 스펙트럼은 그 범위가 끝이 없다. 왜냐하면 감동은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도 얼마든지 몰려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석청(石淸)을 찾아 다녀도 석청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미소를 잃지 않는 라오스의 석청 채취꾼들. 망원경으로 벌의 이동 경로를 살펴볼 때는 매서운 독수리의 눈이 되지만, 한국에서 온 동행자에게 이야기 할 때는 한없이 순수한 ‘친구의 눈’을 보여준다. 발이 젖고 나뭇가지에 얼굴이 찔려도 석청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쉼이 없다. 그들이 가는 곳이 ‘그 날의 길’이 되고, 그 뒤를 지쳐서 쫓아가는 나. 벌이 날아가는 곳으로 길을 만들며 다니는 ‘극강(極強)’의 체험이었다. 여행과 기행의 차이는 이런 것이리라. 기행은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생생하게 적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쩌면 다시 못 볼 것 같은, 그들의 얼굴에 맺혔던 다정한 눈매는 오래 그리울 것 같다.

  건기 때 바닥을 드러내는 메콩강에서 월척(越尺)을 수확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물이 급격하게 빠져 순식간에 작은 물웅덩이로 변한 곳에서는 ‘고기를 잡는다’라는 표현보다는 ‘고기를 마구 집어 올린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다. 사하라 사막처럼 변한 메콩강의 바닥을 거닐었던 것도 잊을 수 없고, 고기를 건져 올릴 때마다 질러대는 기쁨에 찬 환호 소리도 큰 여운을 남긴다. 웅덩이에서 벌어지는 젊은 어부들의 즐거운 유희를 보는 동안 라오스의 얄궂은 태양은 나의 얼굴을 그을려 놓았다.

  이번 촬영 여정의 주제는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을 조명하는 것이었는데, 보이지 않아서, 나타나지 않아서,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서 화도 나고 힘들었던 순간도 꽤 많았다. 그런데 모든 촬영을 마치고 귀국을 하니, 우리 일행의 카메라 앞에서 친절했던, 진지했던, 긴장했던, 그리고 한없이 베풀어 주었던 현지인들의 얼굴이야말로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보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남는 건 사람이다.  

  나를 손님으로 반갑게 맞으며 “많이 드세요”,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라고 말하는 루앙남타  소수민족마을의 사람들. 여행을 그토록 많이 다녔지만 이번에 처음 알았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쉐프가 정성을 다해 양념을 치는 세심함과 같은 것이라고. 양념은 너무 많이 쳐도, 너무 적게 쳐도 음식을 돋보이게 하지 못한다. 이제는 세심하게 ‘즐거움의 양념’을 치면서 여행해야겠다. 즐거움의 양념 무엇이냐고. 그건 애정을 담아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애정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

  지금 아니면 못 볼 지도 모를 지도(地圖)를 찾았던 기행.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국가의 국경이 닫혀버린 지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이 험한 상황을 넘어 여행이 다시 시작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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