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숭대시보 편집국에서는 ‘알쓸신법(알고보면 쓸모있는 신비한 법학상식)’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제안했더랬다. 하지만 도대체 법학상식의 어디가 신비한가? 달리 마땅한 형용사가 없길래 제목을 ‘씬스틸law’로 바꾸어 연재를 시작했다.

  시나이산에서 받은 모세의 十誡라면 신비한 법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법인 동시에 도덕이며 종교였으니. 그러나 현대의 법은 다른 사회규범과 다른 분명한 특질을 가지는데, 바로 조직적인 국가권력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 또는 인간 대 인간의 비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힘을 소환하여 강제력을 발할 수 있다는 것에 법의 특성이 있다.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법정에서 다투게 되었을 때 발생하는 사건의 과정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데르는 아내와 별거하게 되자 치매로 거동이 어려운 아버지를 위해 간병인을 고용했는데 간병인이 무단으로 외출한 사이 노인이 바닥에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이에 분노한 나데르가 간병인을 문밖으로 밀치고, 이로 인해 임신 중이었던 간병인이 유산하자 둘은 법정에 서게 된다.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이해충돌을 조절하고 다툼을 피하기 위한 당위의 법칙(Sollgesetz)에는 법뿐만 아니라 도덕, 관습, 종교도 있다. 나데르는 영리한 위선을 갖춘, 교육받은 중산층으로서, 간병인은 종교적 신념이 강한 빈곤층으로서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요구되는 도덕, 관습, 종교에 따른 규범을 지키고 산다. 나데르는 합리성과 정의관념을 가진 원칙주의자로, 간병인은 깊은 신앙심을 가진 자로 그려지는데(종교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일일이 문의하는 것은 무언가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지, 맹신에 의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기준은 다소 달라도 모두 통상의 윤리의식이나 情理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實利만을 좇는 사람이면 달랐을 테지만 두 사람은 경제적인 배상을 치욕으로 여긴다. 우연히 닥친 불행으로 법정까지 가게 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각자의 행위 준칙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을 향한 비난이 억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간병인이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도둑질 했다는 비난이며 나데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한 생명을 죽게 했다는 비난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절차가 개시되자 나데르와 간병인은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서고 만다. 서로 힐난하는 중에 민망해하기도 미안해하기도 하던 두 사람이, 구속 명령을 내리는 판사에게 갑자기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은 법이 발동할 수 있는 공권력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자신이 옳음을 확인받고자 시작한 싸움인데, 양쪽은 이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비겁한 술책도 불사한다. 거짓증언, 가족에 대한 위협, 정치인들이나 할 법한 프레임 씌우기 까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이제 이기고 지는 문제로 치환되었다. 조용히 지켜보던 딸이 혼란과 갈등 속에서 아빠의 거짓말을 지적하자 나데르는 답한다.

  “아빠는 아줌마가 임신한 걸 알고 있었지만, 그때 너무 화가 나서 생각이 안 났어”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법은 그런 거 몰라. 사실대로 말하면 아빠는 널 두고 감옥에 가야 해”

  간병인도 나름의 이유로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음이 나중에 드러난다. 법은 이들이 결코 들키고 싶지 않았던 치부를 샅샅이 훑어내면서도 각자의 사정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데, 보편타당한 규범으로서 일관성을 유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쪽의 말을 듣는 판사는 구구절절한 사연에 관심이 없고, 태연한 거짓말에도 노하지 않는다.

  부정한 권력이나 명백한 불의, 그런 巨惡과 싸워 패한 것이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싸움의 과정에서 드러난 자잘한 진실들은 양쪽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를 냈다. 공들여 가르치고 길러온 딸 앞에서 자신의 거짓 말을 들켰을 뿐 아니라 그 딸에게도 거짓말을 하게 만든 나데르의 뒷모습은 무참하기 짝이 없다.

  결국 이혼하기로 한 부모 중 한 명을 선택하여 함께 살아야 하는 딸의 처지는 판사와 비슷하다. 아무리 결정이 힘들어도 한쪽의 손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 쪽의 사정을 외면할 수 없어 눈물만 흘리는 모습은, 누구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참으로 쓸쓸하고, 신산(辛 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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