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헌법의 태동과 독일 예술의 중심지 바이마르
현대 헌법의 태동과 독일 예술의 중심지 바이마르
  • 정희섭 교수 (글로벌통상학과)
  • 승인 2020.08.10 03:11
  • 호수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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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그 유명한 이름 바이마르(Weimar). 시험을 보기 위해 ‘바이마르’가 도시 이름인지도 모른 채 ‘바이마르 헌법’이라는 단어의 조합을 외웠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바이마르가 사람 이름이 아닌, 독일 중동부에 있고, 베를린에서도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시임을 알게 되었다. 요즈음엔 중고등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배우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공부하던 시절의 역사란 그냥 무조건 외우는 것이었다. 무조건 외우다 보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이 세계사였고 국사였다. 바이마르 헌법이 가진 역사적 의의를 생각하고 토론하기보다는 ‘현대 헌법의 전형이 된 독일헌법’은 바이마르 헌법이라고 기계적으로 외우는 방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해서 ‘Weimar’를 ‘웨이마르’가 아니라 ‘바이마르’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이 그나마 고무(鼓舞)적인 일이었다. 위대한 헌법이 제정되고 시행된 이 역사적인 도시에서 나는 고작 한국의 역사교육방식을 머릿속으로 비판하고 있다니.

  바이마르 헌법은 1919년 8월 11일에 제정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삼일운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기에 독일에서는 국민주권주의에 입각하여 보통, 평등, 직접, 비밀, 비례대표의 원리를 채택한 근대적인 헌법이 탄생했다. 바이마르 헌법의 근대성은 20세기에 독립하거나 탄생한 신흥국들에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법의 법’이 되는 헌법이 과거의 비합리성에서 탈피하여 근대성을 갖춘 것은 실로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 개헌(改憲)이 논의되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헌법에 명시된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내가 여행하고 있는 도시 바이마르가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듯했다. 한국인들이 앞으로 헌법에서 규정해나갈 자유와 평등, 권력의 원천과 의무의 범위,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방향을 바이마르에서 잠시 동안 고심(苦心)했다.

  통일독일의 웅장한 수도 베를린에서 보리수(菩提樹)의 도시 라이프치히(Leipzig)를 찍고, 광인(狂人) 히틀러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 드레스덴(Dresden)을 거쳐 대문호 괴테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사실 이 도시에서 더 유명한 것은 법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해야 맞다. 바흐, 멘델스존, 리스트, 바그너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는 물론이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양심’으로 불리며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 심지어 러시아의 작가 겸 사상가인 톨스토이도 바이마르에서 활동했다. 왜 사람들이 이 크지 않은 도시를 ‘독일 인문학의 중심지’라고 하는지 직접 와보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인문학을 사람들이 만들고 엮어나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도시의 명성은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살았거나 활동했었나로 판가름 나는 것이리라. 독일의 사계절 중 겨울은 여행자에게는 최악이지만 바이마르가 주는 묵직한 ‘예술적 아우라’는 겨울 여행의 노곤함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독일 문학에서 괴테와 쌍벽을 이루는 실러(Schiller)도 바이마르와 깊은 연관이 있다. 실러는 괴테의 초청으로 바이마르에 와서 희곡 <발헬름 텔>을 탄생시키고, 1805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괴테와 더불어 실러의 집과 동상이 이 도시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헝가리 출신으로 ‘교향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리스트(Liszt) 또한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감독이 되어 활동하였고, 바이마르에서 30년간이나 살면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음악작업에 몰입했다. ‘리스트 기념관’은 도시의 한쪽에서 위대한 음악가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1800년대 바이마르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예술적 품격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은은한 향기를 발하고 있다.

  인류의 대재앙으로 기록될, 아니 인류의 최대재앙으로 기록될 것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을 함께 목도하고 있는 가운데 어느덧 졸업시즌이 되었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를 비대면 수업으로 끝낸 졸업예정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더 많은 학기를 온라인 수업으로 해야 할 후배들을 안쓰러워할지도 모른다. 졸업생이나 재학생 모두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졸업을 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이때지만 바이마르 헌법이 가진 합리적 사상과 바이마르에서 활동했던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두루 갖춘 인재가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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