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평화기념 식전에 참배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자료 : 한겨레신문
히로시마 평화기념 식전에 참배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자료 : 한겨레신문

  8월의 동아시아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기억한다. 많은 방송과 신문들은 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여러 곳에서는 특별 기획 행사들이 열리곤 한다. 19세기 말 이래 지속적으로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인들을 전쟁의 고통으로 밀어 넣은 일본 제국주의의 패전은 동아시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8월을 맞은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 속에 황폐해진 사람과 전쟁터, 그들에 맞서 싸운 독립 전쟁의 영웅들, 일본의 앞잡이가 되었던 친일파를 기억하곤 한다. 

  8월 15일을 일본 정부는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념하는 날’이라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일본의 종전 기념일’이라고 하며, 일부는 ‘패전 기념일’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불림에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책임 의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전몰자를 추도’한다는 것에는 오히려 전쟁을 미화하는 느낌마저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이 ‘평화를 기념’한다는 것에서 ‘평화’는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피해자를 고려한다면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를 기념하는 날’이 옳지 않은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일본 히로시마 도심에 최초의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이어 3일 후에는 나가사키에도 떨어졌다. 피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보다 앞선 7월 26일 포츠담 선언에서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였다. 천황과 대신들은 이를 수용하고자 하였으나 군부가 반대하고, 몇 가지 협상 조건을 내건 사이 미국은 원폭의 현지 실험을 겸한 투하를 결정했다. 소련은 동유럽 지역의 확장을 위해 대일 참전에는 소극적이었으나 원폭 투하 직후인 8월 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동북 지방과 한반도에 소련군을 투입했다. 일본 정부는 무조건 항복에 동의하고, 8월 15일 항복 선언을 했으며, 9월 2일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원폭 투하는 일본의 항복, 전쟁의 종결과 함께 소련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세력 확장과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동반했다. 중요하게 논의되지는 않지만 7월 포츠담 선언을 일본이 수용했다면 한반도의 분단은 없었을 것이며, 분단의 책임도 일본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소련은 포츠담 선언에도 서명하지 않다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듣고는 추가로 서명했다. 그리고 그날 군대를 투입했다. 일본의 한반도 분단 책임론을 강하게 추궁하지 않는 것은 해방 직후 통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들의 책임을 일본에 전가한다는 비판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폭 투하와 피해자 코스프레는 무엇인가? 최초의 피폭 중심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는 매년 8월 6일 총리가 직접 참석하는 기념 식전을 연다. 이곳에서도 이들은 앞서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념하는 날에서 보았듯이 전쟁 책임을 말하지 않는다. 피폭을 계기로 전쟁을 일으킨 침략자, 가해자에서 원폭의 피해자에서 나아가 전쟁의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전쟁을 주도한 사람들과 그들의 전쟁에 참가한 이들을 추도한 현재의 일본 정부와 우익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격렬히 저항한다. 그들이 추도한 사람들이 바로 성범죄와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의 시민들이 헛소리를 한다고 오도하고 있다. 왜냐고? 추도 당하는 이들의 가족과 후손들이 일본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유권자 세력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밀실에서 야합한 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보수 언론이 이용수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벌떼처럼 일어섰다. 언제 그들이 그 문제에 그렇게 관심을 보였으며, 지지를 보냈는지 찾아보기 어려운 데도. 일부 세력과 유튜버들은 수요 집회를 훼방을 놓는 일까지 저지르고 있다. 그들에게 역사란 과연 있는 것인지. 아니 그것을 떠나서 그런 일들을 그들의 자식과 손주들 앞에서 말할 수 있을지.

  해방의 달 8월을 맞은 우리는 푸른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이’ 없는지 스스로를 돌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8월을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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