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 선양’의 그늘에 숨어 스포츠 폭력이 자랐다
‘국위 선양’의 그늘에 숨어 스포츠 폭력이 자랐다
  • 강석찬 수습기자
  • 승인 2020.09.01 12:04
  • 호수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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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6일(금)에 트라이애슬론 故 최숙현 선수가 감독의 폭행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이에 국회는 고질적인 ‘스포츠 폭력’을 막기 위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최 선수의 이름을 빌려 ‘최숙현 법’으로 제정했다. 그러나 스포츠 문화의 근본적인 개선 없는 법과 제도의 보완은 여전히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정의한 스포츠 폭력이란, 스포츠를 매개로 함께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의미하며, 이는 체육계에서 반복되는 문제였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코치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당했다. 심 선수는 지난 2018년 1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2004년부터 상습적인 폭행을 당했고, 2014년부터는 강제 성폭력까지 당했다”며 조재범 코치를 고소했다. 조 코치는 심 선수에게 가한 폭행 사실이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V-리그 2008-09시즌’ MVP와 공격상을 수상한 배구 국가대표 박철우 선수는 지난 2009년에 이상렬 코치에게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폭행 당했다. 지난 2019년 청와대 정혜승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심 선수 관련 국민청원 답변을 위해 스포츠 폭력 사례를 조사한 결과, 20년간 매년 △빙상 △야구 △수영 △태권도 등 종목만 바뀌며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해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9년 11월 인권위가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 선수 5만 7557명 중 34.2%가 △언어폭력 △신체적 가해 △성폭력 등의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같은 피해를 경험한 대학생 선수는 73%였으며, 실업팀 선수는 60.6%에 달했다.


  정치계와 시민단체는 운동선수들의 연이은 피해사례가 ‘국위 선양’과 ‘지도자들의 권위주의’라는 명분에 따른 시대착오적인 문화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인권 의식이 낮았던 1970년대 독재정권하에 국위 선양과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한 체육계 구조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조(목적)는 ‘국민체육진흥법은 체육을 통해 국위 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국가대표 훈련 관리지침 제8조 2항은 ‘국가대표 선수는 선수촌내·외 생활과 훈련 중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선수들이 국위 선양을 위해 좋은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체벌이 가장 효과적인 훈련 수단이라는 의식을 가진 지도자의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 명분이 됐다. 체육 시민연대 허정훈 공동대표는 “선수들은 체육계의 엄격한 위계질서로 인해 불이익과 보복이 두려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선수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런 스포츠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국회가 입법에 나섰다. 지난달 4일(화),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 등 11인이 발의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인 ‘최숙현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개정안은 국민체육진흥법에서 ‘국위 선양’ 문구를 삭제하고, △스포츠 윤리센터의 조사권 강화 △실업팀 선수들의 표준계약서 마련 △선수 관리 담당자 등록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이에 스포츠문화연구소 최동호 소장은 “한국 스포츠에서 국위 선양의 가치를 바꾸겠다는 의미는 한국 스포츠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포츠계의 분위기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되풀이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2014년 정부는 ‘스포츠 공정위원회’를 출범하며 스포츠 폭력을 체육계의 4대 악 중 하나로 규정했다. 또한 스포츠 4대 악 신고센터를 운영해 대대적인 문제 해결에 나선 바 있지만, 심 선수가 폭행 당했다. 이에 지난해 1월 15일(화),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선수들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며 이를 무기로 부당한 행위를 자행하는 것을 뿌리 뽑겠다”며 재발 방지를 선언했지만, 최 선수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스포츠인권연구소 문경란 대표는 “국민체육진흥법은 46차례나 개정된 누더기 법이므로 스포츠의 미래적 가치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은 스포츠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동서대 체육학과 송강영 교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스포츠가치실천주의를 주장했다. 송 교수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대통령부터 일선 현장의 지도자까지 모두 뼈를 깎는 반성과 더불어 지난 문제점을 철저하게 인정해야 한다”며 “스포츠의 핵심 가치를 실천하는 스포츠가치실천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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