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의 위대한 실험이 벌어졌던 피사의 사탑
갈릴레오의 위대한 실험이 벌어졌던 피사의 사탑

  이탈리아는 볼 것도 참 많고 먹을 것도 참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참’이라는 수식어를 곳곳에 ‘참 많이도’ 붙였다. 그중에서도 토스카나 주(州)는 보석처럼 빛나는 지역이다. 꽃의 도시이자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가 있고, 피렌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도(古都) 시에나(Siena)도 있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기쁘게 하는 작은 마을 몬탈치노(Montalcino)가 있고, 키안티(Chianti)의 구릉지역에서는 세계 최고급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여기에 더불어 ‘아름다운 탑의 도시’인 산지미냐노(San Gimignano)는 무려 200여 년간이나 번성하며 그 이름을 이탈리아 역사에 깊숙이 남겼다. 이뿐이랴, 나폴레옹이 유배되었던 엘바 섬도 토스카나 주의 일원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키아니나(Chianina) 품종의 거대한 소다. 이 소에서 생산되는 가죽 제품과 맛있는 스테이크용 고기는 내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한없이 막아 버렸다. 나열하고 설명할 것이 너무 많아서 계속 ‘그리고’, ‘그래서’, ‘뿐만 아니라’를 남발하게 되는 곳이 토스카나 주이다.


  길이가 240km에 달하는 아르노 강은 피렌체를 거쳐서 한때는 강력한 해상 공화국으로 번영을 구가했던 피사(Pisa)에까지 이어진다. 아르노 강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자코모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의 가사에서 너무 많이 듣고 보았던 바로 그 강이 아니던가. 피렌체에서 보고 마시고 먹고 하면서 며칠을 보낸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바로 아르노 강의 끝부분인 피사다. 갈릴레오가 ‘위대한 실험’을 했던 피사의 사탑(Torre Pendente)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피사는 지중해를 호령했던 해운국(海運國)이었다. 우리에게는 사탑(斜塔)으로만 유명한 도시지만 베네치아, 제노바와 더불어 패권을 다투었던 강성한 도시이면서 국가였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건강한 다리는 피사 중앙역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볼 수 있는 피사의 사탑으로 나를 안내한다. 부모님이 나에게 물려주신 건강은 내가 여행을 하는 원동력이다. 사탑을 보려는 의지도, 사탑으로 이동하는 힘도 결국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다. 피렌체에서 이탈리아 친구, 일본 친구와 그렇게 와인과 맥주를 퍼마시고도 하나님을 생각한다. 이 무슨 뜬금없는 감상(感傷)이란 말인가. 


  사탑의 건축은 1173년에 시작되었는데, 1372년까지 무려 200년에 걸쳐서 조금씩 진행되었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감동받고 좋아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누군가 시작한 것을 누군가의 손자가, 또 손자의 손자가 계속 이어서 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신에게서 부여받은 거룩한 에너지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이 단 한 개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늘 한다. 상황 논리에 따라 폐기하고, 불질러버리고 파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계속 짓고 있고, 이어가는 것은 아름다움이고 진정한 인간성(人間性)이라고 생각한다. 사탑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신성(神性)을 닮은 인간성을 혼자 논한다.


  사탑은 토질의 불균형으로 건축 초기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기울어짐을 보수하는 공사를 지속했지만, 탑은 계속 기울어졌다. 이탈리아 전역을 통틀어서 로마네스트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바로 옆의 두오모(Duomo)가 민망해질 정도로 탑은 기울어지기를 계속했다. 294개의 미학적인 나선형 계단을 가진 탑이 조금씩 기울어져 갈 때, 그 당시의 공사담당자들은 기분이 어땠을까. 현재의 대한민국으로 치면 마치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타워가 조금씩 기울어지는 느낌이었을까. 상상의 스토리텔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피사의 두오모가 주(主)고 사탑은 두오모의 부속 건물로 부(副)인데 정작 관광객들의 관심은 사탑의 기울어짐에만 쏠리는 듯하다. 주객전도(主客顚倒)란 말이 피사에 있는 탑에 딱 맞는 말일 줄이야. 


  건축물이 기울어진다는 것은 부실시공의 전형이다. 그러나 피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던 명장(明匠) 갈릴레오는 이 ‘부실한’ 탑에서 낙하의 법칙과 진자의 규칙성을 실험했다. 탑의 기울기는 전적으로 토양에 대한 사전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초기 설계자들의 잘못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대한 과학자의 실험이 바로 이곳에서 벌어진 것이다. 때로는 실수를 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완벽하지 않은 것이 더 큰 의미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피사에서 의미 있는 인간의 실수, 기울어짐의 미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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