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이후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자리 잡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거의 모든 인류가 함께 한지도 벌써 만 육 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바쁜 삶을 살다 보면 금방 지나가 버리는 반년이라는 시간은 사람들의 삶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마주함)를 하나의 자원으로 바라보며, 개인과 공동체의 단위에서 그것의 (주로 긍정적인) 역할과 기능에 주목하는 개념인 ‘사회자본’은 감염병을 피하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필요성 앞에서 무색해졌다. 실제로 최근의 한 연구는 사회적 자본의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 더 많은 코로나 감염이 발생함을 밝히기도 했다. 교육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재택근무의 확산으로 온종일 집에 머무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매일 발표되는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고,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마스크를 챙기는 일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코로나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뉴노멀’의 단편적 모습들이다. 어떤 하나의 사건이 이토록 많은 영역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적이 있었을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1986년 출판된 이래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라는 저서에서 현대사회가 산업사회에서 위험사회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한다. 즉, 현대사회가 재화의 분배에서 위험의 분배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험 앞에서 성별과 계급 등 산업사회에서 집단을 나누던 기존의 방식은 그 유효성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위험사회에서 모든 구성원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벡이 대상으로 삼는 위험은 주로 인간 문명의 발전에 따른 환경문제나 원자력발전 등이다. 마침 이 책이 출간된 1986년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있던 해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된다. 벡은 이미 수년 전 세상을 떠났으나 2020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를 그가 봤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아직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는 못했으나 코로나의 발생 역시 자본주의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바이러스는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 듯 보인다. 일국의 총리가, 국회의원이, 유명 영화배우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서 인구 50명당 한 명의 비율로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훌륭한 복지체제를 자랑하는 북유럽 국가들도 이 위기를 비껴가지는 못했다. 울리히 벡의 또 다른 저서 제목을 빌리자면 말 그대로 ‘글로벌 위험사회’이다.

  크게 봤을 때 전 지구의 모든 사람이 그 위험에 직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똑같은 수준으로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백인보다 코로나에 감염되는 비율은 2.6배, 사망에 이르는 비율은 2.1배 더 높다. 한국에서도 성별에 따른 감염의 정도는 다르며, 사망률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를 인종 혹은 성별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로 설명하기에는 그것을 결정하는 사회경제적인 요인의 영향은 무시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를 들어 집단감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콜센터의 노동자들은 주로 여성이다.

  감염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소위 ‘뉴노멀’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노출된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직종에 있는 사람들인가? 원격회의나 교육을 위한 장비와 시설(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충분한 공간의 존재 여부일 것이다)은 과연 얼마나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가? 자녀가 학교에 가지 못하는 동안 추가로 들어가는 돌봄 노동은 과연 가족 내에서 얼마나 (불)평등하게 나눠지고 있는가? 확산 초기 공적 마스크의 분배는 과연 한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평했는가?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열 명의 한국 사회학자가 쓴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돌베개, 2020)은 이러한 질문과 관련된 사회과학적 고민을 일상의 경험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확실한 것은 코로나 사태로 드러난 것은 단순히 감염병 확산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사회(혹은 전 세계 각각의 사회)의 오래된 민낯이란 점이다. 다시 벡의 개념을 빌려보자면 이러한 문제들을 얼마나 성찰적으로 되짚어보며 그 대응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지가 오늘날 우리 앞에 놓여있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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