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의 덫에서 벗어나기
능력주의의 덫에서 벗어나기
  • 정인관 교수 (정보사회학과)
  • 승인 2020.09.07 18:37
  • 호수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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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가을 한 고위공직자의 임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대 논전은 대학생 선발방식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진행됐고, 그 결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향후 대학 입시에서는 정시의 비중이 늘어나게 됐다. 실제로 학생부종합전형을 중심으로 하는 수시모집 방식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은 상당해 보인다. 이러한 불신은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수치를 기반으로 입시 결과를 온전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커진다. 지난 학기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이 문제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저보다 내신도 좋지 않았던 학생이 OO대에 진학했어요. 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더라고요” 나보다 딱히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친구가 입결이 높은 학교에 진학하는 모습은 공정하지 않아 보인다.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입시 관련 비리 소식은 이러한 문제가 생각보다 광범위할 것이라는 믿음을 키운다. 대학 입시가 직장, 소득, 그리고 결혼 등의 사회경제적인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문제는 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공인된 시험을 통해 모두를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보다 명확하게 비교 가능한 선발 방식이 투명하고 공정해 보인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국가고사를 통한 선발방식 말이다. 국가고사,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 등으로 지난 반세기 넘게 이름과 형태만 바뀌어온, 매해 수십만 명의 열아홉 청춘들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방식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이러한 입시 시스템에서 점수는 능력(실력)과 동의어로 여겨지며 성적이 높은 학생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과 더 높은 소득을 가져가는 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능력주의’라는 용어는 마이클 영이라는 영국의 사회학자가 1958년 발표한 소설 <능력주의의 부상 (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소설은 2034년을 살아가는 마이클 영이라는 사람이 한 세기에 걸친 영국에서의 사회개혁이 어떻게 전통적 계급사회를 능력주의 사회로 변화시켰는지 설명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그 사회개혁의 핵심에는 타고난 배경이 한 사람의 교육 기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교육개혁이 있다. 능력주의로 가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한 사람의 지능에 대한 정확한 검사이며, 이는 그 사람에게 맞는 교육과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렇게 세대를 거쳐 반복된 개혁의 끝은 능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계급사회의 탄생이다. 세습 귀족이 지녔던 특권에 도덕적 정당성까지 갖춘 새로운 엘리트는 이제 지능에 바탕을 둔 동질혼을 통해 다음 세대의 엘리트를 재생산한다. 불평등은 극대화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저항할 의지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이렇듯 능력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은 시작부터 그것이 극단화될 때 불평등은 강화되고 사회는 파괴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개념은 오랫동안 단순히 세습주의 혹은 귀족주의(Aristocracy)에 반대되는, 그래서 더 공정한 사회를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돼왔다.

  “실력주의를 지탱하는 첫 번째 조건은 ‘기회의 균등’이고 두 번째 조건은 ‘과정의 공정성’이지만 실력주의 사회가 진행될수록 둘 다 취약해지게 마련이다”(박남기, <실력의 배신>) 최근 입시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쟁은 과정의 공정성 문제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기회의 균등 문제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기회의 균등 문제는 이미 바꾸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 그런지도 모르겠다. ‘능력=지능+노력’이라는 공식은 개개인의 능력이 가족 배경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타고난 지능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자녀에게 사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차이는 결정적이며,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학생과 돈 걱정 없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생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실상이 그렇다 보니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누군가의 말은 사실 한국에서 능력주의의 실상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으로 들린다. 이렇듯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만 매달릴 때 결론은 늘 암울할 수밖에 없다. 결함 많은 체계 속에서 패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력의 배신>에서 이야기하는 기본소득제나 <당선, 합격, 계급>에서 소설가 장강명이 강조하는 “실패에 대한 대비책”에 대한 논의는 그런 측면에서 귀 기울여 들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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