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에 축성된 최초의 한옥성당인 강화읍성당

  돌이켜 생각건대,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약 4년 동안은 강화도에 참 많이 놀러 다녔다. 해외에서 체류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많이 다닐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을 이용하여 강화도에 간 것 같은데, 특별한 목적이나 일로써가 아니라 순수하게 식도락이나 여흥(餘興)을 즐기러 매달 한 번씩 방문하는 도시가 얼마나 될까.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을 해보면 강화도는 서울에서 의외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풍성하고 볼 것도 많고, 더구나 교통 또한 나쁘지 않아서 쉽게 근접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인천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한 바다를 볼 수가 있다.

  정확히는 내가 여러 가지 교통수단으로 다녔던 곳은 강화도(江華島)가 아니라 강화군(江華郡)이었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고, 강화군은 강화도를 포함한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郡)이다. 나는 강화군 안에 있는 여러 섬과 장소를 두루두루 여행한 것이 된다. 강화도는 그 중 하나의 큰 섬일 뿐이다.

  강화군은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화문석(花紋席)은 초등학교 시험에도 단골로 나오고, 쌀과 인삼의 품질이 좋은 건 전 국민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강화군에 있는 ‘장어마을’ 또한 유명하다. 싱싱한 갯장어 구이가 특히 일미(一味) 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서울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친구와 장어마을에 함께 갔던 날, 그램이 아닌 ‘킬로그램’ 단위로 주문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하는 친구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친구가 일본에서는 장어가 워낙 비싸서 이런 식으로 주문을 못한다고 말했다. 뭐든 일본보다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한국은 축복받은 나라다. 일본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궁색하게 먹는 것보다는 좀 남더라도 배터지게 먹는 것이 더 큰 즐거움이고 행복아니겠는가. 유치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강화군에는 민족의 영산(靈山) 마니산이 있다. 해발 472미터의 마니산에는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정치지도자를 의미하는데, 모든 것을 떠나 한민족의 시조(始祖)가 이 산의 정상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신화이면서 민족적 자부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에 길가메시 서사시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단군신화’가 있다. 묵직한 우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신성한 산에서 매년 전국체전의 성화가 채화되고, 개천절에는 참성단에서 제례가 열린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 정도는 올라가 봐야 하는 마니산을 나는 꽤 많이 올랐다.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또 하나의 사실은 마니산에서 백두산과 한라산의 거리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마니산이 민족통일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나는 일방에 의한 급진적인 통일은 반대하지만, 종국적으로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지금은 게을러지고 코로나 때문에 여러가지를 못하지만 적당한 시기에 다시 가볼 것이다.

  강화도의 서쪽 끝 외포리에서 배를 타면 석모도(席毛島)로 갈 수 있는데, 석모도는 강화도 면적의 7분의 1 정도 밖에 안 되는 섬이다. 그러나 아름답기로는 우리나라에 있는 어느 섬에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영화 촬영지로 꽤 유명하다. <시월애>와 <취화선> 이 석모도에서 촬영되었다. 크지는 않지만 환상적인 일몰과 고즈넉한 해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민머루 해수욕장도 일품이다. 그래도 석모도에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는 보문사(普門寺)다. 보문사는 작게는 전등사, 정수사와 더불어 강화도의 3대 사찰이지만, 크게는 양양의 낙산사, 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관음성지이기도 하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등 구한말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초지진도, 우리가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 지석묘도, 1900년에 건축된 최초의 한옥 성당도 강화군에 있다. 내가 한때 강화군에 자주 갔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도 넌지시 해본다. 그때는 그저 놀러간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의미 있는 장소는 다 가본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런 ‘사악한 변명’을 해도 검증할 사람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큰 의미가 있지만 서울 안에 있어서, 때로는 서울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저평가된 장소와 도시도 있다. 강화도를 포함한 강화군이 왠지 그런 것 같다. 지금보다는 훨씬 젊었을 때,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는 한없이 좋았던 나만의 여행지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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