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가 있는 가정이겠지만, 지구에 말을 배우기 전의 영아만 살아남게 되고 인간이 모두 사라졌다면, 과연 영아들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인류와 같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게 되려면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인간의 진화가 그러했듯이 수십만 년이 걸릴까? 필 자의 생각으로는 두어 세대가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대항해의 시대에서 시작된 서구의 식민지 개척 시절에 보고되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 현상이 있다. 하나는 피진이고 하나는 크레올이다. ‘피진’의 기원은 배를 타고 온 영국인과 교류하던 중국인이 ‘business’라는 단어를 중국어식으로 발음하면서 생겨난 단어라고는 하 는데, 통역할 수 없던 시대에 두 언어권의 화자들이 서로 임시적인 소통을 위해 사용하던 언어를 일컫는 보통명사로 사용된다. 대개는 100개를 넘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며, 문장을 구성하는 규칙, 즉 문법이랄 게 없다. 그에 비해서 크레올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항해 활동을 벌이 던 에스파냐인들이 원주민과 더불어 사용하던 피진 수준의 말이, 이로써 의사소통을 했던 세대의 손자 세대에 의해 완전히 문법적인 체계를 갖춘 새 언어로 탄생한 데서 기원한다. 이들 세대는 스스로가 탄생시킨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크레올은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태평양 도 서 지역 곳곳에서도 보고됐다.

  세상에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려면, 각 사물에 해당하는 명사나 동작에 해당하는 동사 등 어휘에서부터 그것들을 문장으로 구사하기 위한 정교한 규칙을 형성해 나가고, 오늘날처럼 세련된 언어가 되려면 수만 년은 걸릴 듯하지만, 어린이들은 소리를 낼 수 있기만 하다면 스스로가 몇 달 안에 수십 개 이상의 단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그들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기초적인 문법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언어습득 능력은 12세 이후에는 발현되지 않으니,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스스로에게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겠다.

  언어학과는 좀 다른 측면에서, 캐나다 출신의 인지 과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박사는 이를 ‘언어 본능(Language Instinct)’이라 명명하였다. 핑커는 언어가 인류의 공통된 유전적 능력이며 현생 인류의 여러 언어는 각각 정교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문법체계에 대하여 우열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한 일이라는 일침을 놓는다. 이는 문화적 우월성을 언어를 통해 증명해 보이려는 호사가나 일부 서구 지식인들에 대한 과학의 비판이기도 했다. 언어발달뿐만 아 니라, 인간의 일반 인지발달도 유전적인 내용이 우리의 상식보다 중요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어린이가 보편적인 시기에 보편적인 발달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출생 직후의 감각운동기에서 추상적이며 연역적 사고가 발달하는 사춘기 직전의 형식적 조작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경적 요인이 발달 시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생득적으로 정해진 발달과정으로서 유전적 프로그램이라는 관점을 갖는다.

  유전정보가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한다는 연구의 결과들은 20세기 중반의 사회적 분위기와는 충돌하는 면이 있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후, 지식인들이 그 비극의 원인인 전체주의의 인종차별을 경계했기 때문이었다. 나치나 그 이전의 제국주의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우월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다스림으로써 인류의 보편적 행복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열등한 민족은 자연스럽게 도태됨으로써 더 우월한 유전적 형질을 가진 인류로 발달할 수 있다는 신념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원인인지 구실인지 모호한 전쟁의 비극을 치른 지식인들은, 개인 또는 인종 간의 차이는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일 뿐 본래 인류는 같은 능력과 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보는 것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도덕적 근거를 대고 싶어했던 지식인이나 사회운동가에게 핑커는 시대의 가치를 위해서 과학적 사실을 희생했다고 비판한다. 만일 같은 동네에서 같은 날 태어난 두 사람이 성장하면서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직장을 얻어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과연 두 사람은 똑같이 삶의 만족을 느끼며 살까? 아무리 같은 환경이라도, 타고난 기질에 의해서 한 사람 에게는 행복한 일이 다른 한 사람에게는 끔찍하고 지겨운 비극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근거를 태어나면서부터 똑같았다는 데서 찾는 것은, 다르게 태어났으므로 달리 대우해야 한다는, 나치가 제공한 논법과 같다. 핑커는 인간이 ‘빈 서판 (Blank Slate)’으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문제는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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