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반은 이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대학생활 동안 그리고 있던 미래를 그려나가야 하죠.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지원서 작성과 낙방으로부터 좌절감을 느끼곤 합니다. 이럴 때면 마치 자신의 대학생활이 너무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저는 요즘 이와는 반대의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쓸모없었던 시절은 없었다고요. 이제부터 이 변명을 두 가지 이유들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저만의 목적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찾는 일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목적’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동력이 되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는 하루하루 생존하기에도 벅찬 대한민국 사회에서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생존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살’ 이라는 현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는 생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걱정도 없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왜 자살을 했을까요? 저는 그들이 더 이상 살아갈 목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이처럼 인생의 동력원을 찾는 일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들의 대학생활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생활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목적을 설정할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다행히도, 저는 제 삶의 목적을 ‘궁금증 을 풀기 위해 탐구하는 삶’, 그리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삶’에서 찾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실망스러운 순간이 오더라도 제 삶의 목적을 떠올리면서 또 다른 지원서를 작성할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혹여나 아직 찾지 못하신 학우님들께서 계신다면 계속 탐색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추억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대학생활을 하면서 좋은 추억을 쌓았다고 생각해요. 진로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추억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말씀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추억의 힘은 생각보다 위력적입니다. 과거로부터 행복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현실 만족이나 미래 기대로부터 오는 행복감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과거와는 다르게,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반면 과거로부터 얻는 행복감은, 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이에요. 어쩌면 추억은 우리의 행복함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나무계단에 앉아서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물론 그때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자격증 공부를 더 했다면 지금보다 스펙이 아름다웠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는 추억을 취득할 수 있는 시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추억 덕분에, 저는 계속되는 낙방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이유들은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삶이 취직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제 대학생활은 썩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숭실대학교 학우 여러분들이 자신의 대학생활이 쓸모가 있었다고 여기면서 살아가셨으면 해요.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웃으며 추억들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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