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 민족 감정의 치유
한·일 간 민족 감정의 치유
  • 박중현 겸임교수 (사학과)
  • 승인 2020.09.15 10:03
  • 호수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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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자유민주당 결성대회 (자료: 위키백과)
1955년 자유민주당 결성대회 (자료: 위키백과)

  10여 년 전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임진왜란’을 주제로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하고 난 후였다. 그 때 친하게 지내는 일본 교수님이 다가와 ‘어떤 선생이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데 괜찮겠냐?’고 물어 왔다. 그러라고 했는데 그는 독일인이라고 했다. 저녁 만찬 자리에서 우리 둘은 한쪽 구석에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자기는 독일에서 역사를 공부했는데,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을 보고 화가 나서 일본 유학을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정작 자신이 주제로 했던 ‘전쟁 책임과 사죄’는 뒷전으로 하고 일본의 문화에 빠졌다고 한다. 항상 미소 짓는 얼굴로 친절하며, 문화유산과 전통을 지키려 노력하는 일본에 빠졌다 한다.

  결국 박사까지 마치고는 일본에 살면서 일본 문화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데.. 일본의 전통이나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를 하는데 유일하게 한국 학생들만은 표정이 별로였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은 왜 그럴까? 그 궁금증을 풀고 싶어 나를 보자 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나도 궁금해졌다. 아마 ‘국사’를 잘 배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국사’란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언론과 주변에서 배우는 사회교육의 기회가 훨씬 더 많다. 나아가 종종 양국 간에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들은 더욱 국사의 기억을 강화한다. 강제 동원 피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등의 역사에서부터 ‘임진왜란’의 기억까지 우리를 민족 감정에 소환한다.

  이러한 역사 의식의 맨 위에는 삼국 시대 이래로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에 부단히 많은 문화를 전파하였다는 우월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천황조차도 백제계의 피를 받았다고 했다. ‘임진왜란’조차도 일본의 침략을 막아낸 후 많은 도공들이 일본의 도자 문화를 꽃 피웠고, 조선통신사는 문화 사절을 보내 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배웠다. 이런 은덕을 배반하고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으니 배은망덕도 유분수고, 한국인들의 자존심에 상처 준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것에서 출발하는 한국인의 감정은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본은 19세기 말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미개한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 사회의 일원이 되자’는 이 이론은 100년 이상 일본인을 세뇌해 왔다. 패전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진 것이 아니라 미국에 진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는 항상 자신들의 발아래라 생각하였다. 전쟁책임을 인식하고 아시아에 진정으로 사죄해야 한다는 양심세력은 소수였다. 1955년 우파 계열의 자유당과 민주당이 결합하면서 출범한 자유민주당이 40년 가까이 집권을 해 온 결과이다.

  특히 1990년대 ‘55년 체제’가 무너지고 온건파인 자유당 계열의 ‘보수 본류’가 쇠퇴하고, 민주당 계열의 ‘보수 방류’가 집권하면서 극우화 현상이 강해졌다. 일본 정계나 일반 시민들의 기본 인식은 ‘탈아입구’에 많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아시아를 대등한 위치에서 보고자 하지 않는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는데, 한국이 자꾸 사죄와 배상을 하라는 어거지를 부린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 인접성은 물론이고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너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감정적 대응을 넘어서 조금은 큰 시각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 양식 있는 시민의 목소리로 바르게 정부를 추동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런 목소리를 이제는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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