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다 가끔 너희들과 자주 가던 술집이 눈에 밟힐 때가 있다. 너희들과 부르던 노래가, 함께 했던 비슷한 맥락의 얘기들이 귀에 박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스무 살의 기억은 나에게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학교를 입학하기 전 다니던, 다른 학교에서 보냈던 스무 살의 나날들이. 순간적으로 나를 잠식하는 그 나날들 속엔 우리가 서 있다.

  19년 동안 살던 곳을 떠나 처음 가본 자그마한 그 도시에서,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가끔은 살을 부대끼며 잠을 잤다. 처음 보는 방에서. 그렇게 짧지만 커다랬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만들었다. 빠르지만 견고하고 단단하게. 그리고 나는 그 세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세계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떠나야 했지. 나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라는 데미안의 글귀를 병적으로 읊조리며 힘겹게 그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사랑했던 시간과 우리들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배신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늘 괴로웠다. 매일 가던 술집에서 서비스로 주는 팥빙수를 먹을지 라면을 먹을지 맨날 싸웠던 사소한 일들이라던가, 어째 늘 좋았던 날씨 덕에 내 이마에 닿던 온기와 그때마다 나던 햇살의 냄새, 그게 괜스레 들떠서 봄 맞은 강아지마냥 학교를 뛰어다니던 우리들이, 시답지 않은 걸로 다투고 토라지다가, 수업 시간에 책상 위로 또박또박 적는 유치한 비밀 얘기에 킥킥 웃던 그 시간들 전부를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손 놓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다시는, 다시는 찾아와주지 않을 것을 잘 알았다. 그건 기적이니까. 내가 나라서 행복했던 우리가 있던 시간들이 이제 영원히 내 일상이 될 수 없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리고 그게 뼈가 저릴 만큼 너무 아파서. 스무 살 겨울 너무도 따스해서 눈조차 내리지 않던 그 날, 너희들과 이별하며 절대절대절대로 서로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지.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와 우리가 함께했던 그 빛나는 나날들을 잊지 않을 거라고 먼지 쌓이지 않게 매일매일 꺼내서 회상하고 닦아둘 거라고. 나는 일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를 꺼내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났다면 지났을 텐데 나는 아직 그 나날들이 너무도 선명하고 눈부셔서 가끔 운다.

  뭐라 해야 할까. 언제까지 아파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스무 살의 나날들이 꽤 오랫동안 나에게 천이하게 아프길 바란다.

  내가 아주 나이를 많이 먹더라도, 스무 살의 기억과 우리가 있던 시간들이 나에게 좁지만 어두운 안식처가 되길 희망한다.

  서로가 서로여서 충분했기에 그 아무도 필요 없는 우리만의 견고한 세계에서 동그랗게 앉아 웃고 있던 우리들을, 그 잔상을 내가 미련할 만큼 오랫동안 사랑하길 바란다.

  잔상만을 잡고 자신을 위로하고 웃음 짓는 게 바보 같은 일이라면, 그게 미련한 일이라면, 그 바보 같고 미련한 일도 내가 손에 꼭 쥐고 안 놔주길 바란다.

  영원한 게 없다는 사실만이 영원하다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빛나던 나날들과 웃음들이 나의 삶 속에서 영원에 가까운 생명력을 가지길 감히 희망한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