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는 다양하다. 경제적 번영, 정치적 자유, 사회적 포용, 복지 수준, 환경친화력 등은 오늘날 한 사회의 발전 수준 및 미래의 잠재력을 살펴볼 때 빈번하게 인용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특히 냉전이 종식된 20세기 후반 이후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향하는 ‘좋은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정치, 사회, 역사적 배경을 지닌 세계 이백 여 국가들은 각자가 놓여있는 맥락 위에서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려 부단히 노력해왔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어떤 사회는 좀 더 성공적인 모습을, 어떤 사회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여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를 낳는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1990년대 이후 사회과학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개념들 중 하나인 ‘사회자본(Social Capital)’은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 널리 활용되어 왔다. 사회자본의 구체적인 정의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그것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경제자본과는 달리 사람들의 관계 속에 내재해 있는 자원이라는 특성을 지닌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사회과학에서 ‘사회자본’ 개념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의와 미국의 사회학자인 제임스 콜만이지만, 그것을 대중적이고 정책적인 관심의 한 가운데로 끌어 온 사람은 미국의 정치학자인 로버트 퍼트남이었다. 그는 특히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로 사회자본을 지목했다. 퍼트남은 사회자본을 “협력된 행동을 촉진함으로써 사회의 효율을 개선해주는 신뢰, 규범, 연결망과 같은 사회조직의 요소들”로 정의한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1993년에 펴낸 책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Making Democracy Work)>에서 사회자본과 사회발전의 관계에 천착한다. 퍼트남은 지방자치제도 실시 이후 이탈리아의 남부와 북부에서 나타나는 성취의 차이들-즉, 남부보다 북부에서 훨씬 더 자치의 효능이 높은 점-에 주목, 연구를 진행하였다. 지방자치 이후 남부의 비효율적 정책과 부정부패는 북부의 성공적인 정책 실행 및 주민들의 높은 만족감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성공적인 정책 실행에는 해당 지역에 대한 투 자 확충도 포함되며 이는 북부의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 퍼트남에 따르면 관리들의 평균적인 능력이나 정치적 이념 등 대부분의 특성은 두 지역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부와 북부의 극명한 성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인가? 퍼트남은 이것을 거의 천년의 역사를 지닌 북부의 결사체 문화 및 시민참여 전통과 그러한 전통이 부재하는 남부의 차이로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결사체란 꼭 정치적인 목적을 지닌 집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은 조기 축구회나 독서모임 같은 비정치적인 특성을 지닌 모임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목적에서든 연대를 이룬다는 것이고, 그 안에서 신뢰가 자라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은 언제든 다른 목적의 수행으로 전용될 수 있다. 즉 함께 축구하고 책을 읽던 사람들은 언제라도 함께 시민적 감시를 수행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퍼트남보다도 훨씬 앞서 시민참여의 전통에서 민주주의의 씨앗을 읽어낸 사람은 프랑스의 법률가인 토크빌이었다. 1831년 프랑스 정부에 의해 미국의 감옥 제도를 연구하라는 과제를 받아 미국을 방문한 그는 미국 각지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은) 시민 결사체들을 보며 그곳에서 나타나게 될 발전된 민주주의의 미래를 읽어냈다. 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이미 중앙정부의 권한이 비대해지고 있었으며 시민들은 점차 정부에게 더 많은 역할을 맡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혁명의 중추를 이뤘던 시민적 연대와 자율성은 점차 퇴색 되어가고 있었다. 1832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토크 빌은 미국에서 자신이 본 것들을 기반으로 두 권의 책을 쓴다.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는 <미국의 민주주의>이다. 다시 한 세기 반이 더 지나고 나서 퍼트남은 이탈리아에 들이댔던 현미경으로 이번에는 미국 사회를 살펴본다. 그 결과 그는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결사체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함께 모여 볼링을 치기보다는 각자 집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나 홀로 볼링>). 이것을 그는 민주주의 위기의 징후로 파악한다. 장기화되는 코로나,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자칫 좁아지고 멀어지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대면관계를 점차 대체하고 있는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이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가깝고도 안전하게 유지시켜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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