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수원화성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수원화성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을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친 왕이나 백성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왕은 이미 왕이 아니다. 껍질만 왕일 뿐 동족을 배반한 배신자일 뿐이다. 왕의 배신은 일반 백성의 배신보다 수백 배 이상 가중처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사학자가 아니라서 섣불리 조선시대의 왕 중 특정인을 백성을 배반한 왕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동안 봐왔던 여러 사료(史料)를 토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능하고 사악하고 이기적인 왕이 몇 명 있다. 굳이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일 것 같다. 그러나 보석처럼 빛나는 성군(聖君)의 존함도 간혹 있어서, 그들의 탁견과 인품과 개혁은 21세기의 기준으로도 칭송되어야 마땅함을 느낀다. 정조대왕은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조선의 왕이라고 생각한다. ‘대왕(大王)’이라는 말은 아무 데나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다. 

  정조는 왕으로 등극하고 나서도 아버지였던 사도세자의 비운(悲運)을 늘 안타까워했는데, 양주에 있던 아버지의 능을 현재의 화성시에 있는 화산으로 이전했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라 알려진 곳에 아버지의 무덤을 이전하고 나서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원대한 마스터플랜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구상’의 큰 그림은 지금까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수원(水源)이 대왕의 꿈을 간직한 ‘조선의 뉴타운’이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예술인, 개혁 마인드에 충실한 관료들이 총동원되었으며, 재능과 능력이 있으면 남녀노소를 주저하지 않고 도시 건설에 등용하였다. 단원 김홍도, 다산 정약용, 번암 채제공은 그 당시 등용되었던 예술가, 실학자, 관료의 대표적인 이름이 아니던가. 

  정조의 혁신적인 계획으로 시작된 수원화성의 건설은 국운(國運)이 점차 쇠퇴하고 있었던 조선이 다시 반등할 수 있는 큰 기회였다. 둘레가 6km에 달하는 거대한 도성(都城)이 완성됨과 더불어 개혁 군주의 개혁 작업은 순조롭게 나아갈 것 같았다. 조선 전기의 번영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수원이라는 새로운 도시에서 조선이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정조는 마음속에 품고 꿈꿨다. 그러나 조선왕조에는 정조대왕의 갑작스러운 승하(昇遐) 이후에 그의 뜻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인물이 없었다. 개혁의 꿈은 일장춘몽으로 변해갔다.  

  거대한 규모의 수원화성이 약 250년 전의 기술력으로 2년 9개월이라는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빠른 기간 안에 축조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정약용의 거중기였다. 도르래와 물레의 원리에서 창안된 거중기야말로 18세기 조선의 르네상스를 앞당기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하지만 정약용은 정조가 사망한 다음 해인 1801년 신유박해에 연루(連累)되어 긴 유배를 떠나게 된다. 조선은 매 순간 ‘단절의 역사’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기회의 단절, 변화의 단절, 인물의 단절, 그리고 개혁의 단절. 임금의 계획, 임금의 계획을 실현했던 천재들, 그리고 왕의 뜻에 전적으로 호응했던 수많은 백성들이 만든 걸작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어 ‘아름다운 아쉬움’을 발한다. 

  오랜만에 수원을 방문하여 팔달문 앞에 섰다.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뜻의 팔달문은 화성의 남문이다. 10년이었던 성의 예상 공사 기간을 3분의 1로 단축시킨 거중기가 돌을 끌어 올리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리고 행궁로(行宮路)를 따라 걸으며 개혁을 꿈꿨던 위대한 군주의 상상력을 생각했다. 무능한 왕의 자손이 개혁 군주가 되고, 개혁 군주의 자손이 나약하고 비굴하게 국권을 상실하고.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History repeats itself’는 이 순간 나에게 최고의 명언이다. 역사는 이래서 재미있다. 조선의 새로운 부흥을 시작하려고 했던 도시 수원에서 명사(名士)의 문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국내 여행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실현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내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팟캐스트가 아니라서 가게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곳곳에 포진된 맛집과 고풍스러운 찻집, 내가 살고 있는 용산에서 기차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근접성,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열기구 프로그램, 그리고 개혁 군주의 숨결까지, 수원은 멋진 도시다. 

  모녀가 운영하고 있는 괜찮은 맥주집을 발견했는데, 친한 교수님들과 이 가을의 때를 잡아 ‘맥주 마실’을 가야겠다. 물론 코로나가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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