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성과 연결성
단원성과 연결성
  • 오충연 교수 (국어국문학과)
  • 승인 2020.10.13 23:26
  • 호수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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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능이 좋다는 마우스를 새로 구입해서 컴퓨터에 연결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수직 또는 수평으로 이동하는 커서의 움직임을 손의 감각에 맞추기 위한 프로그램을 사용했었지만,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커서의 움직임이 어색할 수 있는데, 몇 시간만 사용해보면 내 뜻대로 정확하게 움직여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니터 화면에 맞추어서 손의 동작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일들을 해나간다. 다초점 렌즈를 장착한 안경을 쓰게 되면, 렌즈 위와 아래의 굴절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내려다보이는 교실의 바닥이 평평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 원래처럼 평평하게 보인다. 그것은 평형감각과 바닥이 평평하다는 기존 인지 정보에 일치되도록 뇌가 망막으로부터 전달된 굴절된 영상의 신경 내용을 보정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의 안정된 감각이나 의식의 정체성은 뇌의 신경체계가 아주 미세하고도 복잡하게 작동함으로써 얻어진다. 예컨대 시야를 좌우로 돌려 봤다고 해서 어지럽다거나, 스스로 옆구리를 긁으며 간지럽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간단하고 명료하다고 생각되는 개념이나 감각 중의 어느 하나도 그러한 조율 없이 단순하게 얻어지는 의식은 없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의 생성문법은 언어능력의 불연속성을 강조했었다. 인간의 언어능력이 일반 인지능력이 발달한 결과의 연속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고, 별개의 유전자적 변이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불연속성은 문법 처리의 층위에도 적용되었다. 흔히 문법 층위는 음운, 형태, 통사(구문), 의미로 구분된다. 이전 연재에서 기술하였듯이 상징능력은 다른 영장류에서도 발견되지만 상징을 조합하여 하나의 사상을 전달하는 능력, 즉 구문론적 능력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된다. 특히 생성문법은 이러한 구문론적 능력이 언어능력의 핵심이며, 다른 문법층위와도 구분되는 자율적 체계로 보았다. 이를 통사자율론이라고도 한다. 

  뇌신경학에서는 뇌가 기능별로 구역화되어 있는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를 단원성(modularity)이라 한다. 지금도 브로카 영역에서 자율적인 구문 처리가 이루어진다고 기대하고 실험하는 신경학자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언어에 대한 불연속적 관점은 뇌의 단원적 특성과 발견과 맞물려서,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학술적 관점이 조금 뒤처져 있는 것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얼핏 뇌과학은 언어에 대한 불연속적 관점을 지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뇌의 단원성에는 함정이 있다. 신경 다발의 단원적인 성격은 우리가 인식하는 층위의 기능적 단원성에 직결되지는 않는다. 이 연재의 세 번째에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의미지도(semantic map)를 소개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휘의 종류마다 뇌의 활성화 영역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포착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각각의 구역에 해당 어휘가 새겨져 있는 것일까? 이는 베르니케 실어증과도 결부지어 생각해봐야 한다. 왼쪽 옆 머리에 해당하는 베르니케 영역의 세포 괴사가 일어나면 엉뚱한 단어들을 마구 조합하여 유창하게 발화하기 때문에 유창성 실어증이라고도 하는데, 정작 환자 본인은 자기가 구사한 문장의 단어들이 엉터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면 베르니케 영역은 마음의 어휘들이 들어 있는 사전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이 두 가지 질문은 모순이다. 그러나 이 두 현상은 모순이 아니다.

  의미지도는 특정 어휘에 따라 활성화되는 구역을 그려낸 것인데, 그것은 의미 내용과 상관되는 영역이지 그 자체가 개념적 위상이나 어휘 등록 구역은 아니다. 예컨대 ‘빨간 장미’와 같은 시인성이 강한 어휘들은 시각영역이 활성화된다. 안구의 시신경과 직결된 후두엽 끝이라기보다는 보다 심상적인 내용으로서 그보다 안쪽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용어처럼 추상적인 어휘는 감각보다는 다른 어휘들과의 관계망이 작동하는데 측전두엽이나 전두엽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청각 영역 부위인 베르니케 영역에서 음상과 대비되어 비로소 어휘적 인식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마저도 어휘와 뇌 영역 간의 연결성을 극도로 단순화한 설명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순하게 여기는 어휘 개념을 인지하는 일이라도 신경의 복합적인 연결체계가 작용해야 가능하다.

  흔히 연결이라고 하면, 어떤 운송체를 전달하는 일 또는 그 통로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경 연결이라고 하면, 신경내용을 전달하는 경로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신경전달물질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맞는 얘기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신경은 그 자체로 다 연결 통로다. 창고가 따로 있어서 그 안의 것을 꺼내어 옮기는 것이 아니고, 연결 자체가 신경 내용의 생성이다. 그래서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면 실어증이 발생하는 일을 두고, 해당 실어증과 관련된 문법을 그 영역에서 전적으로 처리한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뇌의 모듈화된 특성이 곧 문법층위의 분화를 신경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능력이 언어와 관련된 특이한 뇌 영역의 발달로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삼더라도, 높은 수준의 일반 인지능력이 배경이라는 점이 부정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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