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콰이어길을 걸으며 단종의 비애를 상상했다.
메타세콰이어길을 걸으며 단종의 비애를 상상했다.

  시민혁명 이전에 존재했던 절대군주제 국가에서 가장 큰 죄는 대역죄(大逆罪)다. 왕권을 찬탈(簒奪)하고 왕을 죽이려고 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역사를 포함해서 세계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수많은 대역행위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역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삼족(三族)이나 구족(九族)이 살해당하는 처절하고 잔인한 형벌을 받게 되지만 성공할 경우에는 새로운 왕조가 개국되거나 새로운 왕을 중심으로 탄탄한 왕권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치열한 투쟁의 한 가지 형태가 대역이라고 한다면, 성공한 대역은 더 이상 대역이 아닌 승리한 자의 자랑이며 치적(治績)이 된다. 새롭게 등극한 왕은 전왕(前王)의 발자취와 기록을 지우고 왜곡시켜 버린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성공한 대역’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권좌에 오른 사건이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란을 일으켜 어린 단종을 보호하던 김종서와 황보인을 무참히 척살했다. 수없이 많은 고문과 살인을 일삼고 왕권을 훔친 수양대군은 친동생인 안평대군을 강화로, 상왕(上王)인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배된 두 사람은 모두 사사(賜死)되었다. 친족마저 죽이는 인간의 권력은 짧지만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함을 가졌다. 작은 권력이든 큰 권력이든 권력의 속성은 늘 이렇다. 배신과 협잡으로 시작된 권력 쟁탈전은 대부분 살인과 학살로 귀결된다. 조선의 왕들은 선왕(先王)들이 행했던 갖가지 만행과 악행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자기편의 나쁨을 나쁨으로 보지 않는 것은 더 큰 나쁨이라는 생각을 강원도 영서지방의 깊은 산속에서 뜬금없이 하고 있다. 

  단종이 유배된 곳은 영월의 청령포(淸泠浦)다. 단종이 창덕궁을 떠나서 청령포까지 700리 길을 7일 만에 도착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현재의 미터로 환산을 하면 약 275Km에 이른다. 만들어진 길이 아닌 사람이 가는 곳이 길이 되던 그 당시를 고려한다면 얼마나 고달픈 ‘유배여정’이었을지 어렴풋하게나마 상상이 된다. 

  청령포는 ‘육지 속의 작은 섬’이라고 불리는데 험준한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강이 절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눈앞에는 천혜의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지만, 지금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에서 어린 단종이 느꼈을 적막함과 외로움을 생각해본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밀랍 인형이 전시되어 있는 ‘단종어소’는 폐위된 왕의 좌절과 슬픔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단종의 죽음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강에 버려진 그의 시신에 후환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접근조차 하지 않았지만 지사(志士) 엄흥도가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고 역사는 기록했다. 수습된 단종의 시신이 묻혀 있는 곳이 영월의 장릉이다. 래프팅으로 유명한 동강의 휘몰아치는 물살만이 단종의 기구했던 삶을 정확히 목도한 증인이리라.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런 아픈 역사를 알고나 있는지. 

  영월은 강원도의 최남단에 속한다. 충청북도의 단양과 제천이 이웃 도시다. 그래서 그런지 충청도 사투리와 강원도 사투리가 절묘하게 섞여 있는 것 같다. 느리면서도 나름의 억양이 있다. ‘사투리 보존론자’인 나에게는 관찰의 대상이다. 영월의 맛집 ‘장릉 보리밥’에서 온갖 산나물의 향내를 맡으며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언어를 유심히 관찰하는 것도 큰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 멀지 않은 도시 문경의 사투리는 왜 이렇게 독특하게 들리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사투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지도’다.

  동강은 평창의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정선을 지나 영월에 도착하여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는 기암괴석이라는 이름의 동반자들이 즐비하다. 그랜드캐니언과 견주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내 조국 대한민국의 자연을 만끽했다. 

  메타세콰이어길은 담양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영월에도 있었다. 깊은 사색에 잠기려면 이 곳이 정답인 듯하다. 10월 중순에 지어져 다음해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철거된다는 ‘계절 한정판’ 섶다리는 다시 가서 카메라에 담을 것이다. 코로나가 나에게서 앗아간 올해의 여정, 코로나가 나에게 알려 준 국내 여행의 묘미, 이래서 인생은 주고 또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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