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달 23일(수)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한 ‘상법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예고된 개정안에 따르면, 언론사들도 적용대상에 포함돼 오보에 대한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손해의 5배 범위 내에서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와 보도 책임을 묻는 의견이 엇갈리며 입법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확대하는 법무부
  언론사도 적용대상


  지난달 28일(월) 법무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는 손해를 끼친 피해에 상응하는 액수에 대한 보상을 넘어, 불법행위의 반복과 유사한 부당행위를 막기 위한 예방적 성격을 가진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손해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 내로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현재는 이와 더불어 ‘제조물 책임법’ 등 총 20개 법률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상태다.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개정안은 이러한 20개 법률을 하나로 묶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장 전반으로 확대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언론사도 해당 법안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됐다. 법무부는 “최근 범람하는 가짜뉴스, 허위 정보 등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위법행위에 대한 현실적인 책임 추궁 절차나 억제책이 미비했다”며 언론사까지도 확대 적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입법 배경을 설명했다.

 

  언론계 즉각 반발 나서,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돼”


  법무부의 입법 예고가 발표되자 언론계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즉각 반발했다. 언론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언론이 위축돼 표현의 자유가 침해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달 28일(월)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법무부의 입법 예고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공동성명을 냈다. 또한 이들은 법안 자체의 모호성도 지적하며 “악의적 가짜뉴스라는 모호한 잣대로 언론에 징벌적 처벌을 가하겠다는 것은 언론을 사전 검열하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법무법인 ‘이공’ 양홍석 변호사는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 “‘악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애매해 법원이 사안마다 다른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보도를 꺼리는 분위기가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가짜뉴스와 오보에 대한 구분이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성동규 교수는 “가짜뉴스와 오보의 개념적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안 된 상태에서 법무부 입법 예고는 너무 앞서 나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 교수는 “가짜뉴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고, 오보는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의도가 적다는 정도로 구분되기 때문에 법제화할 정도로 가짜뉴스를 엄밀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한 고려대 미디어학부 김성철 교수는 “가짜뉴스를 정의하는 여러 이론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가짜뉴스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된다면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로운 언론, 신뢰도는 하락
  언론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81% 찬성

 

  그러나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지난 6월 2일(화) ‘미디어오늘’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가짜뉴스 보도 언론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81%로 집계됐다.
  또한 지난달 11일(금)에는 ‘가짜뉴스 대만, ‘최고 무기형’ 대한민국도 3억 이상 벌금과 폐간이 가능한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이 시급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됐다. 해당 청원자는 해외 여러 국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한 가짜뉴스 처벌 사례를 제시하며 해당 법안의 국내 도입이 시급함을 주장했다. 이는 지난 10일(토) 오후 6시 기준으로 약 13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러한 반응은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올해 ‘세계 언론 신뢰도’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의 뉴스 신뢰도는 40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지난 4년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지난 4월 국제 언론 감시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20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는 전 세계 180개국 중 우리나라가 42위에 올라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25일(금)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최고의원은 “언론 스스로 설정한 의도와 방향성이 강하고, 사실과 공정의 핵심 가치가 흔들렸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는 넓어졌지만 신뢰는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사실관계는 뒷전, 
  가짜뉴스와 오보를 쏟아내는 언론


  실제 우리나라 언론들의 보도를 면밀히 살펴보면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취재하지 않은 채로 의혹만 악의적으로 인용하거나 가짜뉴스를 재생산하는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 9일(월)자 신문의 ‘코로나 난리통에…조합원 교육한다고 딸기밭에 간 서울대병원 노조’ 기사에서 “민주노총 산하인 서울대병원 노조가 우한 코로나 사태 와중에 노조 교육이라며 단체휴가를 내고 딸기 따기 체험을 가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해당 현장 체험은 이미 취소돼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또한 조선일보는 지난 8월 28일(금)자 신문의 ‘조민,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일방적으로 찾아가 “조국 딸이다, 의사고시 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 기사에서는 “의료계 집단휴진 상황과 함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피부과를 찾아가 담당 교수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실제로는 담당 교수와 만나지 않아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에 지난달 2일(수)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반복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악질적 오보는 그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비상식적 오보는 취재 과정에서 일방적인 주장만 청취하는 편집국 혹은 기자의 확증편향이 반영된 것”이라 논평했다.
  이런 보도 행태는 특정 언론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7월 10일(금) 경찰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북구 북악산 성곽길 인근 산속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고 현장 브리핑을 하기 전까지 수많은 언론사들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재생산했다. △투데이코리아 △서울일보 △YBS뉴스통신 △동양뉴스 등은 故박 전 시장이 사망하기 전날인 9일(목)부터 ‘성균관대 부근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는 미확인 정보를 지속해서 보도했다. 이에 대해 지난 7월 10일(금) 민언련은 “언론의 무분별한 사망 의혹 보도는 확인된 사실을 근거로 기사를 써야 하는 사실 보도 원칙에 위배됐다”며 “저급한 취재행위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러한 가짜뉴스와 오보의 재생산은 과거에서부터 반복돼왔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2014년 4월 18일(금) 홍가혜 씨는 MBN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에 보도되는 모습은 실제 모습과 다르며 해양경찰이 약속한 지원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홍 씨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자 디지틀조선일보는 홍 씨에 대해 취재기자의 단순 추측과 인터넷에 떠도는 유언비어를 사실 검증 없이 작성했다. 홍 씨가 △연예부 기자 사칭 △도쿄 거주 교민 행세 △허언증과 정신질환자라는 등의 가짜 뉴스는 이후 재판을 통해 거짓임이 밝혀졌다.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공인이 아닌 일반인 잠수 지원 자원활동가였던 홍 씨의 사생활 관련 소문을 언급해 거짓말쟁이와 허언증 환자로 몰아간 무차별적인 보도임을 인정한다”며 디지틀조선일보에 명예훼손에 따른 6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재판부는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기사화함에 있어서 진실 여부를 미리 조사하고 점검하는 것은 언론기관의 기본 책무”임을 지적했다.

 

  국내 언론 문제 해결하려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해야


  이에 따라 국내 언론 보도 실태를 지적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본교 법대 윤철홍 명예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요소가 없지는 않겠지만, 무책임한 보도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더 크게 침해됐었다”며 입법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윤 교수는 “표현의 자유에도 내재적인 제한과 책임이 있는데, 언론은 자유만 누리고 이에 상응하는 보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 왔다”고 비판했다. 언론인권센터 윤여진 상임이사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것은 언론사들의 무리한 해석이며, 언론사 스스로 책임지는 환경을 만들어 언론 전체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전했다. 법무부의 입법 예고 이전부터 언론에 대한 징 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지속적으로 발의해 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몇몇 언론의 ‘아니면 말고 식’ 허위보도와 가짜뉴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기사에 대한 책임 의식을 높이고 언론계에 긴장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악의성의 법리적인 해석이 모호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윤 교수는 “‘악의성’과 ‘고의성’은 같은 뜻인데 고의성은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기초 개념”이라며 “국내 30여 개의 경제 관련 특별법과 민법을 통해 이미 법원의 확립된 판례가 나왔다”고 밝혔다.

 

  언론사 내부 자성의 목소리도 있어


  심지어 언론사 내부에서도 입법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겨레 신문은 지난달 26일(토) 발행된 신문의 사설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권력 감시와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공론장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명백한 가짜뉴스와 사실 왜곡은 공론장 자체를 오염시키는 행위이므로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막이 뒤로 숨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한겨레 신문은 “언론의 신뢰와 영향력을 높여 본연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가짜뉴스 억제책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YTN 변상욱 앵커는 “미국은 반복적인 보도에서 고의성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징벌한다”며 “실수나 오보로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당하는 일은 없는데 언론이 엄살을 떨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미국을 포함한 △영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에서는 이미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판례가 있다.

 

  입법 예고됐지만 법안 통과 여부는 미지수


  법무부는 입법 예고 이후, 다음달 7일(토)까지 40일간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다. 이후 △관계부처 협의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올해 안에 국회에 법안이 제출될 예정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과정과 국회의 검토 과정에 따라 실제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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