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조건부 임신 중절 허용에 갈등 더 깊어져
정부의 조건부 임신 중절 허용에 갈등 더 깊어져
  • 최은지 수습기자
  • 승인 2020.10.13 23:26
  • 호수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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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수) 정부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임신 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가 임신 중절과 관련한 법률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본지 1230호 ‘낙태죄 폐지, 그 이후’ 기사 참조).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입법 예고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입법 예고한 개정안에 따르면 낙태죄는 유지하되, 임신 주 수에 따라 허용 여부를 나눈다. 임신 초기인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 요건 없이 임신한 여성의 의사에 따라 임신 중절을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임신 15주부터 24주 이내에는 상담 및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의무로 하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임신 중절’이 허용된다. 즉 아이를 낳거나 기르기 어려운 형편인 여성도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허용 범위를 넓힌 것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임신 중절 수술은 △임부나 배우자에게 유전적 질환이 있는 경우 △임부나 배우자에게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성범죄에 따른 임신 △근친 관계 간 임신 △임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에 한해 허용되고 있다.

  이는 태아가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세계보건기구(이하 WHO)의 연구를 고려한 내용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당시 재판관들은 “임신 14주의 태아는 인지와 사고를 못 하는 시기며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기에 여성 판단에 따라 임신 중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은의법률사무소 이은의 변호사는 “유럽과 일본 같은 선진국 대부분은 전부 12주에서 14주 이내의 임신 중절은 허용하고 있고 한국이 늦은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해외에서는 임신 12주부터 16주까지 임신 중절 수술을 허용하는 국가가 많다. 미국 연방대 법원은 1973년 임신부의 임신 중절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임신 기간을 3개 구간으로 나눈 뒤 제1기(1주~12주)에는 여성 의 임신 중절을 허용했고, 2기(13~24주)에는 국가가 임신 중절 절차에 조건부로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번 개정안은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1년 6개월여 만에 마련된 것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여성을 처벌하는 ‘자기낙태죄’와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의료 진을 처벌하도록 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3명 단순위헌 △4명 헌법불합치 △2명 합헌으로 임신 중절 처벌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 했다. 판단 당시 이은애 헌법재판관은 “임신 14주까지는 여성이 임신 중절 여부를 숙고해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이라며 “이 기간에는 임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헌법재 판소는 즉각적인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이 우려돼 올해 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입법 예고에 대해 여성계는 일제히 반발하며 긴급행동에 나섰다. 낙태죄 전면 폐지 운동을 벌여온 여성단체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지난 7일(수) 성명서에서 “정부의 낙태죄 유지는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과 자기 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것” 이라며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처벌 조항을 형법에 그대로 존속시키는 것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지난 7일(수) 기자 회견을 열고 “헌법불합치 판결 1년 6개월 만에 내놓은 것이 낙태죄가 처음 규정된 이후 66년간 여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어온 낡은 법체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정의당의 당론입법으로 낙태죄 완전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임신 주 수에 따른 임신 중단 허용에 대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임신 중단 허용 기준이 되는 날인 ‘마지막 월경 시작일’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법무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 소속 이한본 변호사는 “사람마다 월경 일자가 불규칙하거나 몇 달씩 건너뛰는 경우도 많아 스스로도 정확한 월경일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빈번” 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의 입법 예고 기간은 오는 11월 16일(월)까지 40일간이다. 이 기간에 법무부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을 거친 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며 개정된 법안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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