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치 판결 이후 1년 반 만에 지난 7일(수) 정부가 부분적으로 임신 중절을 허용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정부가 예고한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초기 14주 까지는 여성의 의사에 따라 임신 중절이 가능하다. 또한 임신 15주에서 24주 이내에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조건부 임신 중절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의 개정안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정부의 개정안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문제가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규범의 내용은 명확하여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칙을 의미한다. 임신 기간은 월경 주기나 초음파를 통해 대략적으로 ‘추산’하는데, 월경 주기의 불규칙성이나 산모와 태아의 영양 상태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 즉 정부가 예고한 개정안처럼 임신 주 수 에 따라 임신 중절 허용 여부를 달리하는 것은 임신 기간을 명확히 확정할 수 없는 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개정안은 당시 헌법재판소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한 취지에 어긋난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여러 사회적·경제적 갈등 상황이 모두 고려 되지 않은 채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 한다는 점에서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주장했다. 즉 정부가 발의한 법 개정안에 따르면 24주가 지나 임신 중절한 여성은 여전히 사유에 상관없이 처벌받기 때문에 임신 중절을 여전히 범죄화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 “낙태죄를 존치시켜 임신 중단을 범죄화하고, 여성의 안전과 권리를 훼손하는 것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는 낙태죄 자체를 비범죄 화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따라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도록 기간을 확대 또는 폐지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 174인 여성 교수 일동’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태아 살인을 정당화하고 생명 경시의 물꼬를 튼 것”이라며 우려 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 임신 중절 범위가 엄격하지 않은 국가일수록 오히려 임신 중절률이 낮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추정 임신 중절률’은 15.8%인데, 비교적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우선시해 임신 중절 허용 폭이 넓은 국가 중 미국 11.8%(2015년 기준), 독일 7.2%(2015년 기준), 벨기에 9.3%(2011년 기준)로 우리나라보다 낮은 임신 중절 비율을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허용 기준을 완화 또는 폐지하는 방식의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국가가 정비해야 할 것은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는 기간 설정보다 오히려 피임과 임신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하고 여성의 양육권과 생활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다. 태아의 생명이 중요하다면 그 생명을 낳아 경제적인 문제 없이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없는 국가가 그저 그 여성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처벌하려 하는 것은 부당하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