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프레카리아트, 그리고 노동의 미래
플랫폼, 프레카리아트, 그리고 노동의 미래
  • 정인관 교수 (정보사회학과)
  • 승인 2020.11.10 14:25
  • 호수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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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소유물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타인과 나눠서 사용하는 것은 규범적으로도 바람직하며 경제적으로도 낭비를 줄이는 일이다. 이것이 미디어뿐만 아니라 항간의 대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공유경제’의 기본 정신이다. 공유경제의 개념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으나 그것이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화된 결정적 계기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오늘날 우버나 애어비앤비 같은 장소 및 차량 공유 서비스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소유자와 사용자의 연결을 통해 가능해지며, 이들을 이어주는 회사들도 점차 그 수와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이러한 주체들이 상호작용하는 디지털 인프라를 우리는 플랫폼이라고 부른다(닉 서르닉, <플랫폼 자본주의>). 플랫폼(들)은 불과 몇 년 사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게 들어왔다. 주말 저녁, 집에 앉아 휴대폰 앱을 이용해 시켜먹는 음식들을 생각해보라. 예전에는 자체 배달원이 있는 가게 음식들만을 시킬 수 있었으나 이제는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기만 하면 훨씬 더 다양한 음식들을 빠르게 즐길 수 있다. 유학 시절, 새벽에 이동할 일이 있을 때면 휴대폰에 깔려 있는 우버앱을 이용하곤 했다. 빠른 배차, 그리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더해 내가 곧 만나게 될 기사의 얼굴과 차량의 종류까지 휴대폰을 이용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기사들은 늘 친절했고, 사탕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이런저런 유쾌한 이야기들을 던지기도 했다. 

 플랫폼 경제 안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들의 수는 점차 늘어가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음식배달이나 차량운전과 관련된 플랫폼 노동자들의 경우 이를 추가적인 돈벌이를 위한 부업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로 플랫폼 노동 참여의 유연성이 지닌 장점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만큼만 일을 해도 된다는 점은 혁신적이며 앞으로 노동이 지니게 될 특성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관점에 대해 플랫폼 노동이 자율적이며 자기결정성이 높다는 것은 허구임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즉, 플랫폼 노동은 훨씬 더 큰 제약에 묶여 있으며, 노동과정 속에서 사적 권리까지도 침해받는다는 것이다. 아담스-프라슬은 그의 책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철저히 감시당하고 평가받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노동자들에 대한 회사의 관점은 기본적으로는 불신이며 따라서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수치로 모니터링 된다. 특정한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들의 평가는 즉각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회사에서 알려준 고객응대 수칙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고객에게 껌이나 사탕을 제공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던지는 것도 회사의 매뉴얼에 들어있다. 또한 자주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거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규칙과 통제는 점수라는 형태로 구체화되며, 점수가 낮으면 일을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형식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의 유연성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또한 실제로 이런저런 비용을 제외하면 플랫폼 노동자가 벌수 있는 돈은 도시에서의 삶을 유지하는데 오히려 부족하다. 이들의 지위가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라는 점은 이들이 처한 모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플랫폼 기업들이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즉, 이들은 예전 같으면 회사에 고용되어 받을 수 있었던 다양한 유형의 복지들을 누리지 못한다. 배달노동자의 경우 빠른 배달을 위해 안전 운전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으며 보험 가입뿐만 아니라 사고가 났을 때의 모든 책임 역시 본인이 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기업이 불과 수백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주로 관리직)만을 고용하고 있는 현실을 혁신으로 봐야할지는 의문이다.

 플랫폼 산업,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증가는 결과적으로 불안정한 자영업 노동자들의 증가를 의미한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가이 스탠딩은 ‘불안정한’이라는 뜻을 지닌 precious라는 단어와 전통적인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를 결합한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가이 스탠딩, <프레카리아트>). 이들은 책의 부제가 알려주는 것처럼 “위험한 노동계급”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프레카리아트의 기준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책에 따르면 기존의 노동자들이 누렸으나 프레카리아트들이 누리지 못하는 노동시민의 일곱 가지 권리는 다음과 같다: 노동시장 보장, 고용 보장, 직무 보장, 근로안전 보장, 숙련기술 재생산 보장, 소득 보장, 대표권 보장. 이러한 현실은 플랫폼 산업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해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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