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적산가옥이 정취있는 카페로 변모했다.
대구의 적산가옥이 정취있는 카페로 변모했다.

  취재를 의뢰받아 실로 오랜만에 대구에 왔다. 지인의 경조사와 2002년 한일월드컵 행사를 사전조사하러 몇 번 오긴 했는데 이렇게 대구의 곳곳을 돌아보러 온 건 처음이다.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음을 이번 여행에서도 다시 깨닫는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서성로 일대의 적산가옥(敵産家屋)은 그것이 가진 역사를 따지기 이전에 꽤 고풍스럽게 보인다. 적산가옥이란 식민지 시절 일본인이 소유했으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남기고 간 주택을 의미한다. 적산가옥의 대부분은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인들에게 불하(拂下)되었다.

  적산가옥은 한 때 일본인들에게 수탈당한 재산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었으나 지금은 도시의 헤리티지(Heritage)로 재평가 받고 있다. 역사의 과정 속에서 도시의 주인은 계속 바뀐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덜한 편이지만 유럽의 경우, 수많은 도시의 주인이 바뀌었다. 이슬람 세력의 손에 들어갔을 때는 모스크가 건설되고, 기독교 세력이 장악했을 때는 성당과 교회가 번성했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은 그 용도가 몇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누가 도시의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이미 지어진 건축물을 파괴한다면 도시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적산가옥들은 도시 근대화 과정 중에 많이 파괴되어 없어졌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들은 ‘보존해야 할 가치’를 이미 인정받았다. 역사는 인위적으로 지우려고 하면 더 살아나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북성로에 있는 <코이커피>는 적산가옥이 재활용된 좋은 예다. 멀리서 딱 봐도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이 아님을 직관한다. 일본의 주택가에서나 볼 수 있는 2층 목조건물인데, 사람들이 들어와 커피를 즐기는 모습이 왠지 보기 좋다. 문화재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그 맛이 특별하다. 

  코이커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264 작은 문학관>이 있다.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이육사 선생님을 기리는 목조건물로 역시 적산가옥을 개조한 것이다. 시인 이육사는 대구에서만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분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도 관심이 없으면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경상감영길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은 적산가옥의 수준이 아닌 대구를 대표하는 ‘콜로니얼(Colonial) 건축물’이다. 현재는 대구의 근대 역사를 증언하는 역사관이 되었지만, 조선을 수탈(收奪)할 목적으로 건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았던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의 대구지점 건물이었다. 건축물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미학적 모습이 결정된다. 한 때 광화문 뒤쪽에 우뚝 솟아 있었던 조선총독부 청사가 생각났다. 지금은 사라져 그 흔적을 찾기도 어려워졌지만 1990년대 초반에는 철거와 보존 사이에서 큰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중요한 건 우리의 의식과 마음속에 있는 것 아닐까. 

  대구하면 역시 막창을 빼놓을 수 없다. 대구에 온 김에 ‘대구막창’을 먹고 가야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 몰려 왔다. 대구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대구 3대 막창’이니 ‘꼭 여기서 먹어야 한다’느니 하는 수많은 블로그를 검색했지만 대구의 여러 장소를 취재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그냥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우연히 발견한 식당이 맛집이었을 때 더 큰 즐거움이 몰려옴을 나는 잘 안다. 

  한 명이 와도 무조건 3인분 주문이 기본이라는 말에 아연실색(啞然失色)했지만 대구에 온 목적을 설명하고 2인분만 시키는 것으로 ‘작은 협상’을 마무리 했다. 막창이 익기 전에 딸려 나오는 여러 가지 반찬을 한가지 씩 맛보았는데 서울보다 매콤한 느낌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해서 그런 것인지, 정말로 대구의 음식이 다른 지역의 음식보다 매콤한 것인지, 먹을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구의 음식이 원래 조금 맵단다. 나는 몰라도 아직 많이 모른다. 그래서 여행을 다닌다.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

  맥주와 함께 집어 먹다 보니 철판은 순식간에 비워지고, 메뉴판에 있는 꼼장어 1인분을 추가해서 먹는 나. 결국은 3인분을 먹은 셈이다. 양도 충분히 준 것 같은데 3인분을 후딱 해치우는 나는 달구벌의 한 가운데서 ‘대식가’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 누가 말했던가. 호모 비아토(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 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을 읊조리며 여행하는 인간인 나는 다음 행선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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